
이승훈(22, 한국체대)의 연이은 쾌거가 세계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부문을 뒤흔들었다. 5,000m 깜짝 은메달로 한 차례 '쓰나미'를 몰고오더니 10,000m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며 그야말로 '태풍'으로 거듭났다.
이승훈은 24일 오전(한국시간) 밴쿠버 리치몬드 오벌서 열린 밴쿠버올림픽 남자빙속 10,000m에서 끝까지 지구력을 유지한 가운데 뛰어난 막판 스퍼트로 12분58초55를 기록, 총 16명의 선수 중 1위를 차지했다. 당연히 돌아온 것은 찬란히 빛나는 금메달.
이날 5조에서 아르옌 판 데 키에프트(네덜란드)와 함께 레이스를 펼친 이승훈(인코스)은 초반부터 힘차게 링크를 돌았다. 상대를 멀리 따돌리면서 일찌감치 자신과의 싸움에 돌입한 이승훈은 5,200m에서 6분44초25를 기록하며 메달 청신호를 밝혔다.
놀라운 점은 후반에도 끝까지 지구력을 유지하며 판 데 키예프트를 1바퀴 이상 추월하는 짜릿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는 것. 그만큼 이승훈은 막바지까지 힘을 잃지 않고 힘차게 빙판 위를 질주했고 마침내 '지옥의 레이스'를 12분대에 통과했다. 단숨에 중간순위 1위에 오르며 금메달을 예고한 순간이었다.
물론, 행운도 작용했다. 장거리 세계기록 보유자(12분41초69)이자 최강자로 손꼽힌 스벤 크라머(네덜란드)가 레이스 도중 코스를 착각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 이에 심판진은 경기 후 크라머를 실격처리했다.
결승선을 통과한 크라머의 기록은 이승훈을 웃돌아 금메달을 놓치는 듯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격 처리와 함께 이승훈은 빛나는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 신기록인 이승훈의 기록은 충분히 금메달을 획득할만한 가치가 있었고, 그야말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장거리 빙속계를 평정한 의미있는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이승훈이 '굴러온 돌'인 점을 감안하면, 빙속계의 놀라움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쇼트트랙 선수였던 이승훈은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자 7월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 전환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10,000m 실전 경험도 이번 대회 전까지 2차례에 불과했다. 지난해 전국 종합 빙상선수권대회와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이승훈이 경험한 10,000m 출전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 두 대회서 이승훈은 자신의 기록을 잇달아 크게 경신하면서 자신감을 높였고, 마침내 '메달성지'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에서 아시아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주종목이었던 5,000m 은메달도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었다. 당초 한국 선수단에서는 이 종목 5위를 목표로 했었다. 아무래도 이승훈의 세계무대 입상은 스피드스케이팅 경험이 적어 어렵다고 판단한 탓이다.
이런 시선에도 이승훈은 깜짝 메달을 거푸 선사했고, 이는 선수단 내부 뿐만 아니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AP 통신 등 외신은 이승훈의 5,000m 은메달 획득 당시 한국 신예의 쾌거라고 표현했고, 5,000m에서는 금메달을 땄던 스벤 크라머는 이승훈이 지난해 초만 해도 쇼트트랙 선수였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이승훈에게 있어 일종의 외도였다. "쇼트트랙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살짝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던 이승훈이었기에 10,000m에서 금메달까지 목에 건 것은 전혀 예상못한 성과다.
'굴러온 돌'이 장거리 빙속계를 평정했다. 이승훈은 과연 이후에도 스피드스케이팅에 계속 도전할까. 이승훈의 깜짝 메달 2개가 대한민국의 감동으로 몰아넣은 가운데 빙속계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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