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켜보던 한국팬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미국의 안톤 오노가 어부지리로 은메달을 목에 걸자 그 탄식은 더욱 짙어졌다.
14일(한국시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서 벌어진 사건이다.
경기 전부터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지목받았던 이정수, 성시백, 이호석이 모두 결승에 출전하면서 한국의 이 종목 메달 싹쓸이도 조심스럽게 점쳐진 상황. 실제로 한국 쇼트트랙 3인방은 멋진 플레이를 펼치면서 막바지 선두권을 유지했다.
마지막 반바퀴 코너를 남겨두고 이정수, 성시백, 이호석이 나란히 1, 2, 3위를 유지하면서 한국은 메달을 모조리 쓸어담는 듯 했다.
하지만 결승선 라인을 코앞에 두고 한국 선수들끼리 서로 순위 욕심을 낸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 3위로 처져 있던 이호석이 앞선 두 명의 동료를 따라잡기 위해 코너에서 치고 나왔지만, 그만 성시백과 충돌하면서 함께 넘어져 그대로 코스를 이탈했다.
다행히 1위였던 이정수(2분17초 61)는 노련하게 앞서나가며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 이번 대회 첫 금메달을 고국에 안겼다. 하지만 성시백, 이호석의 이탈로 멀찌감치 쫓아오던 미국의 안톤 오노와 J.R.셀스키가 생각지도 못했던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는 행운을 안았다.
특히 더욱 속이 쓰라린 것은 은메달을 공짜로(?) 가져간 선수가 다른 선수가 아닌 안톤 오노였다는 점이다.
오노는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당시 김동성과 경쟁할 때 일명 '헐리웃 액션'으로 금메달을 빼앗아간 장본인이다. 오노가 레이스 후반 코너링 때 두 손을 들어올리는 액션을 취한 것이 빌미가 돼 결국 김동성은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고도 실격판정을 받고 어이없이 금메달을 내줘야했다.
'오노 악몽'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 이번에는 동료끼리 경쟁하다가 오노에게 또 한 번 행운의 메달을 안겨주는 속쓰린 장면을 연출한 셈이다.
보호벽에 부딪치며 넘어진 이호석과 성시백은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한동안 일어서지 못하고 땅을 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금메달을 딴 이정수의 표정도 밝지 못했다.
선수 본인들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