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역사' 이영표(32)가 14일 사우디아라비아 리그 알 힐랄의 전지훈련지인 오스트리아로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축구선수로서는 늦은 나이에 새로운 환경과 문화로 향하는 이영표의 도전정신에 많은 축구팬들이 박수와 격려를 보내고 있다. 또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이영표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문화와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많은 팬들이 염려와 걱정의 눈길도 함께 보내고 있다.
아울러 축구 선진국 '유럽'을 떠난다는 점에서는 아쉬움들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나 2010 남아공월드컵이 1년도 채 안남은 상태에서 허정무호의 '유럽파' 핵심전력이었던 이영표가 6년간 누볐던 유럽무대를 떠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될 지 많을 생각을 하게 한다.
이영표는 허정무호 유럽파의 핵심에서 이제 비유럽파로 자리를 옮겼다. 알 힐랄과 1년 계약을 한 상태라 월드컵까지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남아 있어야만 한다.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야할 유럽의 강호들을 상대하고 소기의 결실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유럽무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대표팀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비유럽파가 된 이영표. 과연 태극마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허정무 축구국가대표 감독은 월드컵 본선을 대비하며 유럽에 대한 경쟁력을 수없이 강조했다. 조편성에서 2개의 유럽팀이 속할 것이라 예상하며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럽의 벽을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 허정무 감독은 더욱 많은 유럽파를 바라고 있었다.
허정무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유럽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더 많은 선수들이 유럽에 나가면 나갈수록 좋다고 본다. 박지성, 이영표 등 유럽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어느 누구를 붙여놔도 잘한다. 내구력이 생겼다. 직접 유럽의 선수들과 부딪쳐 보지 않으면 모른다. 요령을 알아야만 한다. 이근호, 이청용, 기성용이 가능하다면 유럽에 가서 직접 뛰는 것이 좋다. 월드컵 본선에서 유럽팀을 만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허정무 감독은 유럽파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비유럽파가 된 이영표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유럽파의 중심이었던 이영표에 대한 기대치가 조금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 리그는 국내에 생소해 오히려 K리그와 J리그보다 덜 주목받을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설기현만이 경험해본 미지의 세계. K리그 선수들처럼 자세히 그리고 자주 관찰할 수도 없고, J리그에서의 활약처럼 크게 이슈화 되지도 않는다. 중계 역시 볼 수가 없고 현지 활약을 담은 언론의 보도 역시 부족하다.
설기현의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에서의 활약(26경기, 1골6도움)이 크게 어필하지 못했고, 설기현의 대표팀 재발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 전례가 있다. 사우디아리바아는 월드컵 본선에 4회 연속 출전했고, AFC챔피언스리그 단골인 아시아 축구 강국이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무대다.
하지만 이영표의 사우디아라비아 행이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알 힐랄행의 가장 긍정적인 요소는 이영표가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도르트문트에서 지난 시즌 후반 주전경쟁에서 밀려 벤치를 지켰던 이영표였다. 이제 알 힐랄에서 주전으로 경기에 나서 마음껏 자신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일만 남았다.
이영표도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시절 소속팀에서 주전경쟁에서 밀려 벤치를 지켰고,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경기력 부족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된 경험이 있다. 이영표의 경기력 유지가 그만큼 태극마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경기력 외적인 부분에서도 이영표는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05경기 출전이라는 A매치 경력과 2차례 월드컵 본선 경험으로 허정무호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리고 젊은 후배들의 우상이기도 했다. 이영표는 경기 외적으로도 너무나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래서 허정무 감독은 그동안 이영표에 대한 무한신뢰를 드러낸 바 있다. 허 감독은 "이영표는 경기력 뿐만 아니라 그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영표는 이제 비유럽파가 됐지만 유럽에서의 경험은 박지성을 제외하고 그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 2003년 PSV아인트호벤을 시작으로 토트넘을 거쳐 2009년 도르트문트까지 유럽에서의 경험이 무려 6년이나 된다. 유럽을 떠났지만 이영표가 가지고 있는, 유럽을 상대하는 노하우, 유럽을 맞이하는 경험은 현 대표팀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 비록 비유럽파가 됐지만 이영표가 유럽을 상대하는 데는 여전히 경쟁력 있는 선수다.
그렇다면 이영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14일 오스트리아로 떠나기 전 만난 이영표는 월드컵 출전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면 꾸준한 출전기회를 얻을 수 있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 이유는 될 수 없다. 축구는 어디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유럽에서의 충분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태극마크는 이영표의 가슴에 계속 남아 있을까, 혹은 이영표를 외면할까. 결말을 알 수 없는,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행을 택한 이영표의 새로운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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