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로부터 410년이 흘렀다.
1598년(선조 31) 11월19일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 수군과 마지막 해전을 벌여 대승을 거뒀던 '노량대첩'.
2008년 8월 22일 베이징 우커송구장서 열린 한-일 올림픽야구 준결승전. 한국의 김경문호는 호시노 재팬을 물리치고 '베이징대첩'을 한국 스포츠사의 한 페이지에 올려놓았다.
한국의 선봉장(선발투수)은 '일본킬러'로 불리는 약관의 김광현. 그는 지난 16일 예선전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5.1이닝 3안타 7탈삼진 1실점으로 적장 와다(6.2이닝 5피안타 10탈삼진 2실점)와 결판을 내지 못했다.
22일 한-일전 마지막 대결에 다시 마운드에 오른 김광현. 그는 홀로 8이닝을 던지며 6안타 2실점(1자책점)으로 버텼다. 그의 호투를 발판으로 한국 타자들은 일본 마운드의 장수들을 모조리 무찌르고 6-2 승리를 이끌어냈다. 김광현이 이번 올림픽 일본전 두 경기 등판에서 남긴 성적은 13.1이닝 9피안타 12탈삼진 3실점(2자책), 1승이다.

김광현에 맞선 일본 투수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못해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김광현이 마운드에서 버틴 8이닝 동안 일본은 6명의 내로라 하는 투수들을 투입하는 물량공세를 펼쳤다. 예선리그를 치르면서 방어율 '0'을 기록한 4명의 투수를 연이어 김광현의 맞상대로 마운드에 올렸다. 선발 스기우치 도시야(소프트뱅크, 7이닝 무실점)를 필두로 가와카미 겐신(주니치, 5.1이닝 무실점)-나루세 요시히사(지바롯데, 9이닝 무실점)-후지카와 규지(한신, 3이닝 무실점) 등이 줄줄이 등판해 김광현과 대결을 벌였다.
그래도 김광현은 물러섬이 없었다. 당당히 맞서나갔다. 견디다 못한 호시노 감독은 일본 최고연봉투수 이와세 히토키(한화 약 50억원, 주니치)를 내보냈고, 이와세가 이승엽에게 역전 홈런을 맞자 예선 4승 가운데 2승을 올린 와쿠이 히데아키(세이부)까지 투입했다. 그야말로 일본은 김광현 한 명을 대적하기 위해 총력전을 전개했다.
김광현의 올해 연봉은 4천만원. 같은 8이닝을 나눠 던진 6명의 일본 투수 연봉 합계는 약 140억원이었다. 이와세(약 50억원) 후지카와(약 21억원), 스기우치(약 20억원), 가와카미(약 35억원), 나루세(약 7억원), 와쿠이(약 7억원)의 맹공을 혼자 막아낸 김광현이었다.
김광현은 6-2로 리드를 잡고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9회 마운드를 윤석민에게 넘겼다.
타선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1회 한국의 실책을 틈타 공세를 펼쳐 선취점을 뽑았고, 3회에도 아오키(시즌 타율 .359)의 적시타로 추가점을 내 한국을 궁지로 내몰았다.

그러나 한국의 창도 곧고 강건했다. 창끝은 예리했고 힘이 있었다.
1-2로 뒤진 7회 후지카와(시즌 방어율 0.81, 32세이브)가 150km가 넘는 직구와 140km에 육박하는 포크볼로 몰아부쳤지만 이대호가 끈질긴 승부로 볼넷을 골라내 탐색전에 성공하자, 고영민이 안타로 뒤를 받쳤다. 이어 등장한 대타 이진영은 5구째 156km짜리 직구를 커트해낸 뒤 1-2간을 가르는 동점 적시타를 터뜨려 후지카와를 부셔버렸다.
상대 방어망이 뚫리자 한국의 공세는 거침이 없었다. 이용규가 8회 등판한 이와세(시즌 방어율2.87, 27세이브)의 2구를 노려쳐 좌전안타로 포문을 열었고, 주포의 공격에 대비했다. 은인자중하던 이승엽은 적극적인 배팅으로 이와세의 5구를 풀스윙, 우측담장을 훌쩍 넘기는 역전 결승홈런으로 승전고를 울렸다. 패장 호시노 감독은 불의의 일격에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패퇴하는 일본에 한국의 가열찬 공격은 계속됐다. 김동주는 이와세 머리 위를 날아가는 빠른 타구를 날려 혼을 빼놓았고, 이미 마음이 다급해진 좌익수 GG사토는 고영민의 타구를 글러브에 담았다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헛손질로 추가점을 내주며 항복의 일성을 내뱉었다.
국민에게 승리 소식을 전한 김경문 감독은 태극전사들을 반갑게 맞이했고, 패장 호시노 감독과 24명의 사무라이들은 씁쓸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과연 '베이징대첩'이라 불릴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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