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구단으로 내년 시즌을 치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과연 이번에는 믿을만 한 것일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21일 두 달 여 동안 별다른 진전없었던 현대 유니콘스 야구단 인수를 전면백지화한다고 STX 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는 입장과 함께 한계에 이르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결국 KBO는 이번 현대 매각 협상 실패로 올 초 농협중앙회에 이어 두 번이나 헛물만 켠 셈이 됐다.
이로써 KBO의 신뢰도 역시 함께 바닥을 치게 됐다.
지난 9일 각 언론들은 두산중공업의 '담수화 관련 핵심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고위 간부들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수조원에 달하는 형사·민사소송까지 겹쳐진 만큼 쉽사리 정리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KBO는 "현대 인수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간단하게 치부하며 "STX로부터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사안이 커져가고 있었지만 하일성 사무총장을 비롯한 KBO 일행은 대표팀의 전지훈련지인 일본 오키나와에 머물고 있었다. 현대 인수 문제 뿐 아니라 심판들과의 연봉협상도 마무리지어야 하는 등 산재한 현안은 뒤로 하고 있었다.
신상우 KBO 총재 역시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해 박용오 전 총재 후임으로 취임한 신 총재는 '정치권 인사로의 회귀', '낙하산 인사'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돔구장 건설 등 희망적인 청사진을 계속 제시, 프로야구계를 장미빛으로 물들여 놓을 수장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말'만 앞세우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현대 인수는 담보로 쓴 KBO 기금이 100억대를 돌파하면서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기업은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시작부터 빚을 떠안고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손사래를 칠만 하다.
연봉을 12월까지만 지급하는 야구의 특성으로 여유가 있다는 KBO의 입장이지만 1월에도 구단 직원들의 연봉은 계속 나가야 한다. 대출 자금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고 12월말이면 현대의 공중분해 여부가 사실상 판가름 나게 된다.
지난 1999년 쌍방울의 경우 12월을 넘겼지만 SK가 재창단을 조건으로 팀을 그대로 인수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이번에는 언론에 알리지 않은 채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겠다"고 KBO 한 고위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정작 먼저 정보를 제공한 것은 최고 수장인 신 총재였다.
지난 9일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팀과 상비군의 마지막 국내 연습경기가 열렸던 잠실구장. 신 총재는 이날 양팀에게 격려를 위한 금일봉을 전달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경기장을 찾은 한 관중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야구장에 메아리쳤다.
"신 총재는 현대 문제나 빨리 해결하라. 내년에 7개 구단이 야구하게 생겼다."
당시 경기장에 모여있던 기자단과 야구관계자들은 이 외마디에 미소만 지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STX의 현대 인수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우려의 목소리는 현실이 돼버렸고 KBO의 남은 신뢰마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이미 KBO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신상우, 하일성 물러나라'는 문구가 가득하다. 이제 현대 인수가 결정된다 하더라도 신뢰를 원상복구하기는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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