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굉음과 함께 밴 한대가 통째로 폭발한다. 순간 문짝 하나가 50m는 떨어진 메인 카메라 쪽으로 날라와 사람들은 순간 움찔한다.
"귀 터지는 줄 알았네, 그래도 위험한 장면이 무사하게 잘 가서 다행이네요." 불길을 피해 뒤로 멀찌감치 물러난 황정민이 아직도 얼얼한지 귀를 만지며 한마디 한다.
불타는 밴 뒤로 펼쳐지는 먹물빛의 바다, 바다와 항구 사이를 가르는 차가운 철조망이 이곳이 항구 밖은 곧 제 3지대인 대한민국이면서 대한민국이 아닌 미묘한 공간임을 강조한다.
영화 '사생결단'(감독 최호 제작 MK 픽쳐스)의 부산 감천항 촬영 현장이다. 최호 감독이 감천항을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촬영 장소로 콕 집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 곳이 가장 부산다움이 묻어나는 곳이잖아요. 처음 장소 헌팅을 할 때 이곳에서 하이라이트를 찍어야 겠구나 결정했죠." 부산다움이 강조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지난 98년 IMF 시절 오히려 번성했던 부산 뒷골목의 마약시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IMF의 환란과 현실에 대한 고통을 잊고 싶어했던 사람들은 마약으로 몰렸고, 상대적으로 항구도시인 부산은 마약 특수구로 호황을 누렸다. 최호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과 장소 헌팅을 위해 2년간 부산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현지조사를 하고, 직접 당시의 마약상들과 마약검거 경찰을 만났었다.

하지만 영화 '사생결단'은 당시 마약에 취했던 부산 뒷 골목의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 두 남자의 관계에 주목한다.악어와 악어새같은 형사 경장(황정민)과 마약상 상도(류승범)의 공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하는 공생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사생결단으로까지 서로를 치닫게 하는 이 두 남자의 위험한 관계는 차라리 공생(共生) 보다는 공사(共死)에 가까워 보인다.
11일 감천항에서의 촬영 장면은 이 '사생결단'으로 맞붙는 콤비가 끝까지 가서 부딪치는 장면이다. 황정민은 "영화에서 채 20분도 안되는 시간이지만 각자 인물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장면이다"며 "이 감천항 장면을 위해 영화는 처음부터 그렇게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고 설명한다.
류승범은 "공생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이 서로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마지막에 혈투를 벌이는 장면이다"며 "영화적으로 끝까지 감정을 치닫게 하는 장면이다"며 긴장한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항구 밖은 바로 제 3지대라는 이 곳에서의 폭발씬 때문에 약 2개월에 걸쳐 감천항 관리 사무소에 청원을 해왔다. 다행히 폭발씬 촬영 분이 무사히 진행되어 스텝들과 배우들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끝도 없이 달려온 이 위험한 남자들이, 그 끝은 무엇인가 이면의 것을 마주하는 장면이 이 폭발씬이라면, 곧 해결된 듯, 해결되지 않은 또다른 끝을 향해 배우들은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촬영 전 기자 간담회에서 "액션씬이 많은데, 형사라 제가 주로 때리거든요. 이제 때리는 것도 지겨워요" 라던 황정민은 이번에는 정말 '개같이 구르며 싸우는 때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사라진다. 잘나가는 마약상 답게 명품 옷차림으로 도배한 류승범 역시 총총히 사라진다. 갯바람 냄새가 훅 불어오는 감천항은 다시 다음 씬을 준비하기 위한 스텝들의 바쁜 발걸음으로 가득찬다.
"여태까지의 한국 영화가 못 보여주던 부분을 보여주는 새로운 영화이다"고 황정민이 장담하는 영화 '사생결단'은 현재 마무리 촬영 중이며 오는 4월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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