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말수가 많지 않은 강동원은 인터뷰가 쉽지 않은 배우로 손꼽힌다. 배우가 까다롭다는 것이 아니라, 답이 워낙 짧으므로 질문을 굉장히 많이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그런데 이번 '전,란' 인터뷰는 어딘가 좀 다른 분위기다. "조금만 더 부연해달라"는 요청이 나오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답이 길어졌고, 배우 역시 기자들과 좀 더 많이 소통하려 하는 느낌이 강했다. 질문 사이사이 리액션도 인상적. "강동원이 달라졌어요!"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싶을 정도. 덕분에 강동원이 '전,란'과 천영 캐릭터를 얼마나 애정과 진심 담아 완성했는지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1일 전 세계에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전,란'(감독 김상만)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을 맡아 기대를 모았으며, 강동원과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합을 맞췄다.
강동원은 최고의 검술 실력을 가진 노비 천영 역을 맡아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천영은 부당하게 규정된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본래의 양인 신분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집념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인물.
강동원은 뛰어난 검술 액션은 물론 천영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또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외아들이자 친구 종려 역의 박정민과 뜨거운 브로맨스 케미를 완성했다. 이에 '전,란'은 2주 연속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영화(비영어) 부문 3위를 차지하는 등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다음은 강동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넷플릭스 영화기 때문에 촬영할 때 좀 달랐다 하는 지점이 있었나?
"제작 준비를 할 때는 극장용 영화로 기획한 거로 알고 있다. 그래서 기존 영화 찍듯이 촬영했다. 조금 달랐던 게 하나 있다면 2주 차 정도 촬영을 진행하고 나서 카메라가 왜 이렇게 가까이 있을 때가 많나 싶었다. 그래서 "클로즈업이 너무 많지 않냐"라고 물었더니 "넷플릭스잖아"라고 하시더라. 어떤 디바이스로 봐도 감정 표현이 많아지려면 클로즈업이 많을 수밖에 없겠더라."
- 카메라가 어느 정도로 가깝게 들어온 건가?
"카메라를 검 위에 붙인 적도 있다. 사실 카메라가 가까이 들어오면 부담스럽다. 카메라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가까이 들어온다는 건데, 그 앞에서 연기해야 하고 시선 처리도 해야 한다. 클로즈업이 들어오면 누군가와 호흡을 못 한다. 그래서 연기하기 힘들다. 특히 동선의 한계가 생긴다. 조금만 돌려도 너무 많이 움직이는 것이 되니까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데 열심히 했다."
- 7년의 전쟁 전후를 표현해야 했는데, 천영의 감정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잡아갔나?
"어린 시절 천영은 천둥벌거숭이 같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뛰어놀기도 하면서, 만화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노비로 잡혀 와서 종려와 친해지게 되면서 어느 정도 신분을 받아들이면서도 늘 자유로운 몸이 되고 싶다고 갈망했다. 종려가 있어서 버티면서 살았던 것 같다. 종려가 계속 시험에 낙방하니까 시험을 대신 보고 자유를 달라고 한다. 하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친구에게도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다시 잡혀 왔을 때는 친구고 뭐고 싶지만 종려에 대한 애정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애증이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비밀을 얘기하지 않는다. 계속 그렇게 살다가 전쟁이 나고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다. 7년의 과정은 안 나오지만, 이후 등장했을 때 편안한 느낌이었으면 했다. 전쟁을 겪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자유롭게 산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잃게 된다. 그래서 진짜 자유의 몸이 되고 싶어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감정선을 잡았다. 처음부터 그 정도의 감정으로 가지 않아도 표현은 할 수 있지만, 그 정도로 가야 나중에 몰입도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인이 그리 좋소? 뭐하면 잡아 오고"라는 대사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좀 더 노래하듯이 해야 하나 싶고. 거기에 감정이 많이 담겨 있다."
- 천영과 종려의 감정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박정민 배우는 둘의 감정선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고 하더라.
"박정민이 그렇게 준비를 해왔다. 어디까지 가려고 그러는지 의문이었다. 모니터를 봤을 때도 박정민이 훨씬 공격적이라 '멜로눈깔'이라고 했다."
- 천영과 종려의 브로맨스에 대해 어떻게 느꼈나?
"박정민이 그렇게 글썽이며 연기를 해놓고는 이제 와서 자기는 몰랐다고 하나 싶다. 진짜 박정민이 되게 뜨겁게 준비를 해왔다. 속이 뜨거운 사람인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되게 침착하고 차갑다고 해야 하나. 겉으로는 그래 보일 수 있는데 실제로는 되게 뜨거운 사람인 것 같다. 제가 오히려 좀 차가운 톤이라 "진짜로 이만큼까지 갈 거야?"라고 하는데, 제가 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가보자고 한다. 시나리오에도 둘이 친구 이상으로 아리송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박정민이 해석한 건 저보다 더 뜨거웠다."
- 박정민 배우는 천영의 얼굴을 잡았을 때 주변 공기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스태프들도 받았다고 얘기했다.
"저는 그 전부터 느꼈다. 어디까지 갈 건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박정민이 뜨겁게 준비를 하니까 저는 그냥 거기에 맞춰서 감정선을 가져갔다. 너무 커질 때는 감독님이 눌렀던 것 같은데, 그냥 놔뒀으면 어디까지 갔을지 모르겠다."
- 박찬욱 감독이 단어의 장음, 단음에 대해 조언을 했다고 했는데, 제작자와 배우로서 만난 박찬욱 감독의 인상은 어땠나?
"제가 놀랄 정도로 정말 현장에 안 나오셨다. 제가 알기론, 제 촬영 때는 두 번 오셨다. 초반에 한 번 오셨는데 그것도 첫 촬영이 아니었다. 4회차 때 오셨고, 회식하는 날 몇 시간 전에 오셨다. 술 드시러 오신 거다. 그 후론 그분을 볼 수 없었다. 진짜 홍보할 때도 한 번도 못 뵈었다. 쿨한 제작자시다."
- 박정민 배우가 자신이 살갑지 못해서 죄송한 부분이 있지만, 사실 자신의 입장에선 강동원 배우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말을 많이 건 거라고 하더라. 현장에선 어땠는지 좀 궁금하다.
"평소에도 말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말이 적은 것도 아니고, 늘 자연스러운 친구다. 무대에 올라갈 때도 한결같다. 그래서 저는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지금 생각난 건 과거 시험을 보는데 한자로 써있었다. 마지막 글자를 모르겠더라. 옆에 박정민이 있는데 혼자 생각하다가, 할 말이 없어서 "저거 무슨 글자죠?"라고 물었다. 그런데 본인도 모르더라. 지금이야 친해져서 "나도 앞은 알아"라고 했을 텐데, 안 친하니까 "아, 그렇구나"라며 썰렁해 했던 기억이 난다."
- 천영은 자유를 오래 갈망했다. 천영 대신 시험을 대신 본다고 했을 때 친구를 위해서가 먼저였나, 자신의 자유를 위한 게 먼저였나?
"친구를 위해서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공짜로는 할 수 없어서 그렇게 딜을 한 거다. 종려가 몇 번 낙방하니까 천영은 답답했을 것 같다.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약해서라는 것을 아니까. 몇 년간 참다가 이제 나이가 더 들면 늦으니 대신 시험을 봐준 거다. 만약 실력이 안 됐다면 안 그랬을 텐데, 실력이 되는데도 계속 떨어지니 면천 받는 조건으로 했다고 생각한다."
- 의병단과 함께 하는 촬영도 재미있는 일화가 많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
"사극을 찍으면 늘 산 타고 오지로 가는 것이 많다. 가는 길은 험난하고 힘든데 가서는 좋다고 한다. 등산도 그렇지 않나. 올라갈 땐 힘들어도 정상에서 뷰를 바라볼 때가 좋다. 똑같다. "뭐 이런 곳에서 하냐" 하면서 올라가는데 가면 "우와 너무 좋다"라고 한다. 화장실 같은 건 힘들지만.(웃음)"
- 김신록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진짜 열정이 엄청난 배우다. 준비도 엄청 많이 해오는 뜨거운 배우다. 박정민보다 더 뜨거운 것 같다. 제 등을 발로 차서 제가 넘어진 상태에서 대사하는 신이었는데 올라타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올라타라고 했는데 더 맞았다. 원래는 그 정도 맞는 것이 아니었는데 더 많이 맞았다. 그래서 그 신이 더 살았던 것 같다. 준비를 정말 많이 하고, 더 효과적인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얘기한다."
- 여러 반응 중에 사극톤이 어색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원래 사극톤 쓰는 걸 안 좋아한다. 사실 그 시대의 말투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전형적일 수 있다. '예전엔 이렇게 말했을 거야'라고 상상하면서 하는 것이고, 그 톤이라는 것이 언젠가부터 전형화된 거다. 100년 전에 녹음된 말을 들었을 때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 조선 시대 말도 그렇지 않겠나. 물론 사극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기대감이 있으니까 저 혼자 현대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 전형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도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것일 텐데 왜 따라 해야 하나 싶다. 제 해석대로 하려고 한다. 원래도 누군가가 정해놓은 것을 하는 걸 싫어한다."
- 40대가 되고 나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여유가 많이 생겼다. 예전에는 이게 안 되면 전전긍긍하고 불안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뭐가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뭐' 이렇게 한다. 일희일비는 예전부터 안했는데, 좀 더 완벽주의 성향이 강했다. 그래서 힘들었다. 지금은 그게 많이 없어졌고, 좀 더 자유로워졌다. 나쁜 점은 회복이 더디다. 사실 운동 능력 같은 건 아직 크게 달라진 건 못 느끼는데, 제일 많이 느끼는 건 다음 날 일어났을 때다. '왜 이렇게 힘들지?' 생각하면 어제 운동을 했더라. 예전보다 확실히 다쳐도 회복이 늦다."
- 앞으로 40대 그리고 50대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싶나?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액션 영화도 많이 찍어야겠다 싶다. 나중엔 못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쉬는 것 없이 해왔는데, 더 꾸준히 최대한 더 많이 찍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나이 들어서 못할 테니 지금 나이에 맞는 걸 최대한 많이 찍고 싶다. 진짜로 3년 전쯤 '브로커'를 준비할 때였는데, 체력적으로 되게 힘든 날이었다. 끝내고 돌아와서 쉬고 있는데 조금만 있으면 액션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래서 혼자 액션 기획을 3개 했다. 그중 하나가 어쩌면 내년에 들어갈 수 있다. '전,란'도 천영 캐릭터가 들어왔을 때 2~3년만 지나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조건 해야 한다고 했다."
- 그 작품엔 직접 출연하나?
"맞다. 제가 출연하려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놉시스로 썼다."
- 아카데미 회원이 되니 어떤가?
"어플 계정에 로그인하면 회원 아이디를 준다. 그 안에 심사해야 하는 영화가 떠 있다. TV에 어플을 다운 받으면 바로 영화를 볼 수 있더라. 회비를 낸 보람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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