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이토록 섬세하고, 가슴 따뜻한 영화가 또 있을까. '말없는 소녀'가 전하는 사랑의 의미가 묵직하다.
'말없는 소녀'(감독 콤 베어리드)는 애정 없는 가족으로부터 먼 친척 부부에게 떠맡겨진 어린 소녀 코오트(캐서린 클린치 분)가 인생을 바꾸는 짧고 찬란한 여름을 보내면서 사랑받는 것이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내는가를 밀도 있게 다룬 작품이다. 아일랜드의 여류 작가인 클레어 키건의 중편 소설인 '맡겨진 소녀'를 원작으로 한다.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2관왕(제네레이션 K플러스 부문 대상인 국제심사위원상, 수정곰상 작품상 특별언급) 석권,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노미네이트 등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37관왕을 석권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의 배경은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이다. 무심하고 거친 아버지는 도박에 빠져있고, 네 아이를 둔 어머니는 다섯째를 임신 중이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 가족, 특히 부모에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소녀 코오트는 말이 없고 수줍음 많은 아이다. 학교에서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의 실수로 치마에 우유를 쏟아도 아무 말도 못 한 채 부끄러워 도망쳐 버린다. 하지만 주변에선 이런 코오트를 '괴짜', '겉도는 아이'라고 부른다.
부모는 이런 코오트를 방학 동안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맡긴다. 아버지는 코오트의 짐은 고사하고 잘 있으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린다. 아일린(캐리 크로울리 분)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 코오트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정성 다해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빗질을 해준다. 특히 코오트가 첫 날 침대에 실례했음에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매트리스가 푹 꺼졌다며 코오트에게 미안해하던 장면은 아일린이 얼마나 배려심이 깊은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아일린의 정성스러운 빗질에 따라갈수록 풍성해지고 단정해지는 머리칼처럼, 코오트 역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다. 마치 진짜 엄마와 딸처럼, 함께 집안일을 하면서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과정이 아름다운 동화를 보는 느낌이다.
코오트를 냉랭하게 대하던 아저씨 숀(앤드류 베넷 분)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마치 "오다가 주웠어"라고 하는 것처럼 툭 건넨 쿠키 하나는 그 자체로 뭉클하다. 숀이 시키는 대로 빠르게 뛰기 시작한 코오트의 표정엔 온기가 더해지고, 그렇게 세 사람 사이엔 떼어놓기 힘든 특별한 우정이 싹튼다.
코오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다정함 속에 제대로 대답하는 법을 배우고 책도 이전보다 훨씬 능숙하게 읽게 된다. 농장 일도 잘한다.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들에겐 가장 찬란하고 평화로운 여름이었다.
물론 이들에게도 아픔이 존재하고, 이를 아무렇지 않게 건드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노골적으로 인물의 상처를 드러내거나 슬픔이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코오트의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과정은 참으로 담백하고 차분하다. 말 없는 여백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는 엔딩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향해 뛰어온 코오트를 꼭 안아주는 숀은 말 없이 온기와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코오트의 "아빠"란 단어의 뜻도 관객들의 해석에 맡긴다. 그래서 더욱 감동이 배가 되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콤 베어리드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빛나는 순간이다.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연기 역시 인상적. 특히 캐서린 클린치는 코오트가 느끼는 감정을 깊은 눈빛과 미세하게 변하는 표정으로 표현해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어른들의 따뜻한 눈빛과 배려, 다정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정말 아름답고 찬란한 수작이다.
5월 31일 개봉. 러닝타임 95분.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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