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지영 기자] '동주', '자산어보', '사도' 등의 사극으로 관객과 만나온 이준익 감독이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역사 속 인물과 관객을 조우하게 만들었던 이준익 감독은 이번 티빙 오리지널 '욘더'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티빙 오리지널 '욘더'는 2010년 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한 김장환 작가의 소설 '굿바이, 욘더'를 원작으로 한다. 11년 전 이준익 감독의 마음을 흔들었던 '굿바이, 욘더'는 오랜 시간이 지나, 적절한 때인 지금 티빙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작품은 세상을 떠난 아내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남자가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미지의 공간 욘더에 초대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11년 전에 처음 세상에 나온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신선하고 이준익 감독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 원작과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욘더'는 이준익 감독의 첫 연출작이자 첫 드라마로 주목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사극물을 비롯해 '라디오스타', '변산' 등 신선한 시도를 선보였던 그는 이번 '욘더' 역시 자신만이 그릴 수 있는 색채로 영화 같은 연출력을 자랑한다.
-'욘더'는 11년 전에 출간된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지금의 '욘더'가 탄생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요.
11년 전 원작을 봤을 때는 다른 작품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후 '욘더' 시나리오 작업을 해보려다가 엎었다. 그때의 저는 생각이 미숙해 SF판타지에 집중했지만, '이거 망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수고한 노력과 시간을 덮어버리고 영화를 계속 찍었다. '자산어보' 촬영 후 다시 '욘더'를 들여다봤고 그때야 콤팩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원작을 드라마화하면서 가장 중점에 둔 것은 무엇이었나요?
맨 처음에 썼던 '욘더' 시나리오와 지금의 '욘더'는 전혀 다르다. 욕심을 덜고 본진에 충실해 현실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깊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물론 그 안에서 큰 걸 바라보면 좋겠지만.(웃음) 가장 작은 이야기로 가장 깊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욘더'가 탄생했다.
-감독님께서 신하균, 한지민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 덕분에 '휴먼 멜로'가 됐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어떤 장면을 찍으면서 그런 기분을 느끼셨을까요?
바닷가 캠핑장에서 사진 찍는 장면이 참 좋았다. 그걸 촬영하면서 '신하균이 멜로가 되네' 싶었다. 한지민이 '바다가 너무 좋아'라고 하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멜로는 '나 너 사랑해'라고 말하는 건 멜로가 아닌 것 같다. 내가 당신을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게 멜로가 아닐까. 나의 멜로는 그렇다. 당신을 여기는 마음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대놓고 표현하는 건 멜로가 아니다. 그건 낭만이 없지 않나.
-범죄, 오락 등의 장르물이 범람하는 요즘, '욘더'는 다소 다른 색채를 띱니다. '자산어보', '동주', '사도' 등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던 것과 비슷해 보이는데요.
최근 OTT로 많은 작품이 대중과 만나고 있다. 그러면서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이야기의 세계를 폭넓게 보고 있지 않나.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경험하면 더 나아간 이야기가 생긴다. 장르적 컨벤션이 주는 자극은 흥미나 킬링타임이 주된 목적이다. 이런 것도 좋지만 반대로 세이빙 타임 무비를 하고 싶었다. 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영화보다 생각하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좋은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영화가 끝날 때 다시 되새겨 보면서 영화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그런 영화를 '욘더'로 보여주고 싶었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욘더'가 던지는 메시지는 제법 무겁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2030 세대는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가치가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니까. 하지만 5060 세대는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남아있는 삶이 얼마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저도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나고 '언제 죽지?'라는 생각을 한다. '욘더'를 보다 보면 이런 문득문득, 어떤 순간의 감정에서, 대사에서, 유사 감정을 느낀다. 젊은 분들이 유사 감정을 느끼기엔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러니 자기 세대에 맞지 않는 구분에서 '욘더'에 흥미를 잃었다면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한다. 이 이야기가 가진 죽음이라는 소재의 특정성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욘더'는 현실의 삶을 버리고 안락사를 선택해 욘더 세계로 가는 모습으로 '영원은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재현의 마지막 대사인 "아름다운 기억이 소중한 것은 그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 울림을 주는데요.
인간은 수천 년 전부터 불멸을 꿈꿨다. 죽음이 갖고 있는 무한성은 디지털의 무한성을 맞이했다고 본다. 유한을 벗어난 무한의 존재 개념은 기억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원작에서 '불멸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는데, '누군가의 소멸로 내가 존재했고, 누군가의 생성을 위해 내가 소멸하는 게 올바른 세상인가?' 싶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불멸을 꿈꿨고 그 이기심 때문에 인간은 더 불행해졌다고 생각한다.
-극의 말미 재현과 이후가 물약을 마시지만, 재현만 살아남습니다. 세이렌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이후와 욘더가 계속 존재한다는 의미인가요?
우리는 아름다운 만남을 꿈꾸며 살지 아름다운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별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거나 아주 불편함이 남는다. 어차피 인간은 죽을 때라는 전제가 있으니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아름다운 만남은 그리워하면서 아름다운 이별은 왜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슬픔은 반드시 온다. 그렇다면 슬픔조차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본다. 재현이 눈밭에서 외치는 게 최선이다. 재현이 할 수 있는 최선. 그게 얼마나 소중하냐. 이기주의라고 비난하기에는 진심이 아름답다. 이 사람은 아름다운 이별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름다운 이별이 이 영화의 목적이었으니까.
-신하균 씨와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지만,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들었습니다. 극에서 어떤 부분, 혹은 어떤 장면이 인간의 이기심을 가장 많이 표현했나요?
도처에 이기심이 있다고 본다. 이후(한지민 분)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하지만 재현(신하균 분)는 그걸 비난하지 않는다. 극 중 '과거도 현재도 아닌데 당신은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을 이후가 한다. 내가 감정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군가와의 이별을 통해 들었을 때 스스로가 '비겁한 인간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 힘으로 닫을 수 없는 문이 있다고 재현이 하지 않나. 그 문을 닫을 수 있는 사람이 온다고. 이병률 시인의 '사람이 온다'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극에선 '나 여기 있어'라는 대사가 반복됩니다. '여기 있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심어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모든 생명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산다. 저마다의 존재 증명 방식이 다른데 존재가 사라졌을 때 존재의 부재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엔 존재가 사라지면 부재였다. 그런데 이젠 오프라인 존재가 부재라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SNS, 커뮤니티 등에서 존재 증명을 하지 않나. 죽어도 존재하는 것이다. 저는 그게 욘더라고 본다.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라고 존재하는 것을 인지한 순간 그 사람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게 존재의 개념이라고 본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만날 일이 없다고 보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욘더'의 성과는 어떻게 보시나요. 또 파라마운트+를 통해 해외 시청자와도 만나게 됐는데요.
영화와 OTT는 피드백이 너무 다르다. 영화는 화끈하다. 안 좋으면 그냥 막 화살이 날아와 맞고 밤에 욱신욱신한다. 그런데 OTT는 안 좋은 얘기도 있고 좋은 얘기도 있다. 안 좋은 얘기는 보약이 되는 것이고 좋은 얘기는 스태프에게 보상이 된다. '욘더'는 아직 반응을 크게 보지 못했고 이제 시작인 것 같다. 내년에 해외에 공개된다고 하더라. 오픈하는 과정에서 해외 공개가 결정됐는데 우리나라에서 응원받지 못한 작품이 해외에서 새는 바가지가 될까 봐 걱정이 크다. 적어도 전 세계에 공개됐을 때 망신만 당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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