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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화제작 인터뷰]'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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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상,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할까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간호사 윤영(이주영 분)이 일하는 병원에서 어느날 의문의 사진이 발견된다. 남녀로 보이는 두 인체가 성관계를 맺고 있는 엑스레이 사진이다. 사진만 보아서는 피사체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다. 윤영은 그 사진의 주인공이 자신과 남자친구 성원(구교환 분)은 아닌지 불안하고, 병원에 무사히 다닐 수 있을지 걱정한다. 그런데 이런 걱정에 빠진 사람은 윤영만이 아닌 것 같다. 다음날 출근을 하니, 병원에 있는 사람은 자신과 부원장 경진(문소리 분) 뿐이다.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고 있는 수많은 직원들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윤영과 경진은 궁금하다.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에 대해 논한다. '믿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두 명의 직원들을 찾아가 믿음의 합당함을 확인하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이 과정에서 믿음과 의심의 근거를 차례로 마주한다. 그리고 "이제 사람을 믿기로 하자"며 경진을 설득하던 윤영의 신념은 남자친구 성원(구교환 분)과의 관계에서 시험을 맞는다.

공사장 인부로 일하던 성원도 누군가를 향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괴로워하던 성원은 곧 혼자 의심의 상상을 부풀리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깨닫는다. 그 말해지지 않는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꽤나 답답한 일이라는 것도 윤영을 통해 체감한다. 하지만 상대가 느끼는 불안의 원인이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행동이었을 때, 문제는 다른 차원의 것이 된다. 그리고 이들의 불안은 믿고 발 붙일 곳 하나 없는 도시살이의 현실과 맞물려 확장된다.

영화 '메기'(감독 이옥섭, 제작 2x9HD)의 정서를 채우는 것은 윤영이 겪게 되는 믿음, 불안, 의심 등 다채로운 감정의 파노라마다. 믿음을 주창해 온 윤영은 제3자로부터 가장 가깝다고 여겨온 사람 성원의 이면을 듣게 되며 혼란에 빠진다. 자신에게 전해진 성원의 과거가 과연 진실인지를 고민하고, 그 진위여부와 별개로 이미 성원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의심과 불안은 오해와 배신감을 낳는다. 하지만 "혼자 의심하고 부풀리고 있던" 마음이 꼭 그르다고는 할 수 없다. 영화는 '비윤리'의 범위가 각자에게 다르게 측정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단지 그 앞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인물의 치밀한 압박감을 자유분방한 터치로 펼쳐낸다.

영화를 연출한 이옥섭은 단편 '4학년 보경이'(2014)로 제12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내경쟁 심사위원 특별상과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구교환 감독과 함께 연출한 단편 '플라이투더스카이'(2015)로 제1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내경쟁 대상을 수상한 감독이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재기발랄한 서사와 감각적인 영상미로 영화 팬들의 꾸준한 지지를 얻어왔다. '메기'는 그의 첫 장편 영화다.

이하 영화 '메기'를 연출한 이옥섭 감독과 일문일답

(이하 기사의 내용에는 관객에 따라 영화의 스포일러라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여러 상황과 이야기가 얽힌 서사의 영화다. 그것이 확장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관객에게 가장 던지고 싶었던 질문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다.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상대라 해도 그가 다른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와 이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여러 이야기가 교차하는 것을 보며 '이옥섭의 장편은 이런 색깔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도 궁금하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 무언가를 정해두고 작업하지 않는다. 여기로 갔다, 저기로 갔다, 하면서 시작한다. 엑스레이실 에피소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필름 사진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에 더해 최근 큰 문제로 논의되고 있는 불법촬영 문제 역시 내게 영향을 준 것 같다. 불법촬영 영상이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일지도 몰라'라는 공포감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지 않나. 심지어 (많은 여성들이) 화장실에서도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행동한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런 문제에 대한 공포감이 이런 이야기를 쓰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애초 시나리오는 엑스레이 필름을 발견한 후 세 사람이 병원을 그만두는 내용이었다. 한 명은 당사자, 한 명은 사진의 주인공이 자신이라 오해한 사람, 한 명은그만둔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관심있던 인물은 사진 속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생각한 캐릭터였다. 그 인물에 가장 애정이 가더라. 그러면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갔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가 진짜라 믿었던 것이 진짜가 아닐 때가 있다. 반대로, 진짜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진짜인 것도 있지 않나. (영화를 작업하던) 지난 2017년은 나 스스로 그에 대한 판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때였다."

-윤영과 성원, 공사장의 인부들 등 많은 인물들이 주거, 고용, 폭력, 재난 등 여러 문제 앞에서 저마다의 불안에 시달린다.

"우리 모두 불안하지 않나. 나의 경우 2012년 독립했는데 벌써 네 번의 이사를 했다. 게다가 영화를 찍을 때 쯤은 한반도 지진이 공포를 주던 시기이기도 했다. 세들어 사는 집에서 2년에 한 번 이사를 가야 하는데다, 일자리도 부족하고, 땅까지 흔들린다니. 정말 온전히 뿌리 내리고 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평온하지 않고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극 중 윤영 역시 그랬을 것이다. 남자친구까지 온전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지니 무엇을 믿어야 할지 고민했을 것 같다. 윤영 같은 인물을 통해 청년들이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그리려 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어떤 것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유명 배우 문소리의 캐스팅 배경도 궁금했다.

"평소 너무 좋아했던 배우였다. 찍는 내내 너무 좋았다. 단편으로 영화제에 갔을 때 우연히 두 번 다 내 영화가 문소리 선배의 단편 연출작과 같은 섹션에서 상영됐다. 그래서 팬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로케이션 헌팅을 다닐 때 문소리 선배가 출연하기로 했다는 말을 소속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날 헌팅을 성공하지 못했는데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웃음)"

-'꿈의 제인'의 이주영이 윤영 역을 맡아 다시 구교환('메기'의 배우 겸 프로듀서)와 연기했다.

"가만히 있을 때, 이주영의 표정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준다. 그 느낌이 매력적이다. 극 중 윤영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에도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에서 빛이 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문소리와 이주영에 더해 권해효, 동방우(명계남의 새 이름), 김꽃비, 오희준 등 반가운 얼굴들도 많이 보였다. 인부로 등장하는 래퍼 던밀스의 캐스팅 과정도 궁금하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개막작 영상을 연출했을 때, 개막식을 진행한 권해효 선배에게 인사를 드린 적 있다. 영화에선 아주 짧게 등장하는데, 캐릭터가 쌓이지 않고 바로 뭔가를 이야기해도 신뢰감이 깔려 있는 배우가 필요해 출연을 요청드렸다. 내게는 권해효 선배가 그런 느낌이었다. 동방우 선배의 경우 그간 영화에서 무서운 역할을 많이 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친절하고 농담도 많이 하며 분위기를 풀어주는 분이다. 그래서 귀여운 어른으로 캐스팅했다.(웃음) 오희준은 단편 '악당출현'을 보고 꼭 함께 작업해 보고싶은 배우였고, 간병인으로 나온 임수형의 연기도 너무 좋았다. 김꽃비의 경우 (단편 '4학년 보경이' 등에서) 함께 작업한 적이 있었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너무 빨라 내가 뭘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던밀스 캐스팅에는 구교환 선배의 제안이 있었다. 넉살과 던밀스의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보던 그가 '(던밀스가) 연기를 잘 할 것 같다'고 하더라. 극 중 급히 현장에 모인 인부 역이니 뭔가 다른 일을 하다 온 느낌을 주길 원했는데 던밀스의 이미지에 이미 그런 느낌이 배어 있었다. 진지하고 신사적이고 또 친절한 모습으로 연기에 임했다. 현장의 돌발 상황에서도 화 한 번 내지 않고, 동료들을 편하게 해 줬다."

-극 중 윤영이 제안하는 '믿음교육'은 감독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보고 계속 의도를 찾으려 하지 않나. 나는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내게는 그것이 '믿음교육' 같은 것이다.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결심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웃음)"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작지원작이다. 준비 및 선정 과정은 어땠나.

"'청년'이라는 키워드를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선정위원회를 조직해 이 키워드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을 선정한다더라. 우리(이옥섭 감독·구교환 프로듀서)를 선정한 건 그간 우리 영화에 청년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인 것 같다.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하지만 유쾌한 이야기라 선택되지 않았나 싶다."

-부산국제영화제 첫 상영 후 관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영화를 처음 선보인 소감도 궁금하다.

"첫 상영 때 너무 떨렸다. 좋은 설렘이지만, 긴장이 너무 많이 됐다. 그래서 첫 상영을 앞두고 계속 마인드 콘트롤을 했다. '관객들이 내 영화를 안 좋아한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되뇌었다. 그러던 중 인터뷰 요청이 와서 기분이 좋았다.(웃음) 내가 만든 영화이니 내게는 재밌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아닐 수 있다. 가수들이 '단 한 명의 팬이 있다고 해도 그 앞에서 노래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나. 예전엔 그 말이 '오글거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알겠더라. 나는 영화를 너무 찍고 싶은데, 내 영화를 누구 한 명이라도 좋아해 준다면 그것이 정말 큰 용기가 될 것 같다. "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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