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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한번볼래?]'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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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여성 윤진아의 이야기가 주는 공감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서른 다섯 살 여성 윤진아는 성실한 직장인이다. 커피 전문 기업의 매장 총괄팀 슈퍼바이저로, 까칠한 상사들에게도 업무 능력만은 두말 없이 인정받는 대리다. 저렴한 타사 원두를 섞어 커피를 내리거나 현금 계산분을 의도적으로 포스에 입력하지 않는 불량 가맹점의 행태를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꼼꼼하게 점검한다. 종일 외근을 해야 하는 날엔 운동화와 구두를 수 차례 갈아 신으며 고군분투하지만, 혼자 있을 때가 아니면 평정의 표정을 잃지 않는 프로페셔널이다.

윤진아의 모토는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직장 조직 내의 여성들이 흔히 겪는 성희롱과 추행, 사생활에 대한 조롱 같은 것들 앞에서도 그 선택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엔 '사회생활 만렙'으로, 또 다른 누구의 눈엔 '너무 참아주는' 동료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진아는 악의가 없는 사람이다. 고생한 후배를 안아주는 따뜻한 심성도 지녔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예쁜 누나, 극본 김은, 연출 안판석, 제작 드라마하우스, 콘텐츠케이)에서 주인공 윤진아(손예진 분)를 고민에 빠뜨리는 사건은 연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 일이다. 이후에야 진아에 의해 발각되는 헤어짐의 직접적인 이유는 연인 규민(오륭 분)이 진아와 헤어지고 그간 몰래 만나 온 20대 여성을 선택하려 한 결심이었다.

1화에서 그려진 진아와 규민의 만남에서 "내가 왜 싫어졌는데?"라는 진아의 질문에 규민은 "우리 만나는 게 곤약 같아"라고 답한다. 씹는 맛도 향도 밍밍한, 무색무취의 곤약을 자신과의 관계에 빗대는 규민을 앞에서, 그리고 그가 마냥 어려보이는 여성과 만남을 갖는 장면을 보면서, 진아는 분노와 허무함을 느낀다. 이별의 이유가 결코 규민이 말한 권태로움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주요 줄거리로 삼는 진아와 서준희(정해인 분)의 관계는 그 후의 이야기다. 진아는 연인과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겪는 보편적인 상처에 더해 소위 '조건 좋은' 남성으로 분류돼 온 규민이 정말로 그저 '어린' 여성과 자신을 비교하며 양다리를 걸쳤었다는 사실에 당혹감까지 얻는다. 헤어지려는 규민 앞에서 혹시나 덧붙여 물었던 말, "20대 '상큼이'가 아니라서?"라는 질문이 곧 그 이별의 정답이었던 것인지 되묻게 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진아의 절친한 친구 서경선(장소연 분)의 남동생 준희가 진아의 앞에 우연히 나타난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의 동생' '누나의 친구'로 가까이 지내 왔던 두 사람은 종종 만나 커피나 맥주를 마신다. 가벼운 고민을 나누기도, 시시껄렁한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건 단지 이들의 회사가 같은 건물에 있어서만은 아니다. 해외 파견 근무를 마치고 3년 만에 한국 본사로 돌아온 인물 준희는 자유롭게 살다 귀국하는 것을 달갑지 않아했지만, 진아를 만나며 변화를 느낀다. 진아가 더는 '그냥 아는 누나'로만 보이지 않는다. 헤어진 남자친구와 다시 만나는 것으로 오해해 툴툴대기도 하고, 그에 기분이 상해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진아의 동기에게 굳이 큰 소리로 말을 걸기도 한다.

전과 다른 기분이 드는 건 진아도 마찬가지다. 친구의 남동생이자 남동생의 친구이기도 한, 어리게만 봤던 준희가 불쑥 불쑥 일상에 끼어든다. 준희에 대해 물으며 관심을 표하는 동기에게 묘한 경계심을 느낀다. "남자들은 예쁘면 그냥 마냥 좋냐?"라 묻고, "누나가 더 예뻐"라는 답을 듣고는 멋쩍음에 애먼 머리카락만 귀 뒤로 넘긴다. 준희는 비가 오자 한 개의 우산을 사 들고 진아의 어깨를 감싸안는다. 이 정도면 '썸'의 시작인데, 이를 바라보는 진아의 마음은 그래도 조심스럽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가진 결은 최근의 다른 로맨스 드라마들이 보여줬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것이 사실이다. 매 신의 높은 완성도와 영상미, 군더더기 없는 연출의 흐름까지 안판석 감독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하게 만든다. 미모만이 현실적이지 않을 뿐 인물의 모든 행동과 감정을 현실에 가깝게 연기하고 있는 손예진의 활약도 호평을 받아 마땅하다. 멜로 드라마의 첫 주연으로 나선 정해인의 연기도 무리없어 보인다.

하지만 '웰메이드 멜로물'로만 규정하기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나눌 이야기를 충실히 던져주는 드라마다. 그것은 대부분 이 드라마가 중심에 내세운 여성 주인공 윤진아의 삶에서 기인한다. 진아의 일상과 감정에 변수로 작용하는 준희와의 관계 역시 한국 사회에서 살아 온 1980년대생, 30대 중반 여성으로서 윤진아의 경험들과 무관하게 해석될 수 없다. 이 드라마의 어느 순간들이 그렇게 낭만적으로만은 보이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출간 이래 무수한 화제를 낳으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이다. 동시대를 살아온 여성 독자들로부터 특히 큰 공감을 이끌어냈던 이 소설은 일상과 사회 구조를 넘나들며 공기처럼 만연해 온 한국 사회의 성차별 문화를 한 인물의 삶을 통해 보편화한 작품이었다. 드라마가 진아와 준희의 연애를 그리기 전 진아와 여성 동료들의 꽤 현실적인 직장 생활을 공들여 비춰준 덕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윤진아를 보며 이 소설의 맥락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서른 한 살에도 대학생의 대시를 받았을만큼, 그리고 사실 그런 대사를 통한 설명이 딱히 필요치 않을 만큼 충분히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진아는 오로지 나이 때문에 연애 시장에서 패배감을 느낀다. 비슷한 조건의 남녀를 비교할 때 유독 여성의 높은 연령에 패널티를 부과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설정이다.

진아의 엄마 김미연(길해연 분)이 딸에게 기대하는 것들, '조건 좋은' 연인과 빨리 결혼할 것을 독촉하는 일장연설의 내용에서도 기시감이 느껴진다. 딸의 행복보다는 장녀의 그럴싸한 결혼,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사위를 영입하는 일이 더 중요해보이는 대목이다. 미연의 세대로부터 파괴되지 않고 흘러온 결혼과 성에 대한 봉건적 관념들은 고스란히 딸의 세대를 압박한다.

이 드라마가 한국사회 30대 여성들의 고민을 비교적 잘 인지하고 있다는 가정은 모순적으로 높은 기대치 속 우려를 안기기도 한다. 연하의 남성과의 연애가 마치 주인공의 손상된 자존감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그려질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주인공이 성실함과 능력, 선한 인품과 아름다운 외모까지 갖췄음에도 말이다. 그에 더해 규민이 만나던 20대 여성 캐릭터를 재현한 방식은 오히려 양다리 연애관계의 주체인 규민을 향한 시선보다도 전형적이었다.

안판석 감독의 연출에는 불필요한 설명이 적다. 그저 '쇼잉'과 '텔링'이 적재적소에 쓰인다. 시퀀스의 전환이 구구절절하지 않고, 그것이 예술성을 담보한다. 바로 그 이유로 여백이 살아난다. 독해될 구석이 많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명작으로 추앙받는 MBC '하얀거탑'도, JTBC 드라마국의 명성을 쌓아올렸던 '아내의 자격' '밀회'도 그랬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역시 마찬가지의 미덕을 지녔다.

이 여백들이 차후엔 우려를 기우로 만들어내길 바란다. 윤진아의 고민과 결정들이 보다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낼 단서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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