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동현기자] 명장(名將).
대한민국 스포츠계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철학이 있고 기준이 있다. 단순히 우승 횟수에서만 이러한 판단 가치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철학과 기준을 ‘얼마나 뚜렷하게 팬들에게 각인시키느냐’ 또한 명장의 판단 요소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은 대한민국 농구계가 인정하는 명장이다. 그는 경복고와 연세대라는 농구 명문을 거치면서 1988년 농구대잔치에서 대회 최우수선수까지 수상한 스타 플레이어였다.
뜻하지 않은 무릎 부상으로 28살이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한 후 곧바로 모교 연세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1998~1999시즌 34살의 나이로 인천 대우 제우스(현 인천 전자랜드)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최하위도 경험해보고 우승 문턱에도 가지 못했지만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아 2004년 4월, 농구 명문 현대모비스로 이적한다. 그리고 1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는 현대모비스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우승, 그리고 하위권까지 영욕의 시간을 모두 견뎌냈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전술 그리고 화려한 커리어까지. 그는 대한민국 농구팬이라면 모두가 인정하는 명장이다. '조이뉴스24'는 창간 13주년을 맞아 유 감독의 농구인생을 되짚었다.
◆1천경기 돌파 "순간 순간 다 생각나"
13년이라는 시간동안 유 감독이 모비스에서 치른 경기수만 709경기, 승리만 해도 421승(288패, 29일 기준)다. 421승은 KBL 단일 클럽 최다승 기록이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기간동안 그는 정규리그 5회 우승, 챔피언결정전 5회 우승을 달성했다. 부산 KIA 엔터프라이즈 시절을 포함해 현대모비스의 정규리그 우승이 6회, 챔피언결정전 우승이 6회이니 사실상 최전성기를 유 감독이 만들어낸 셈이다.
특히 2012~2013시즌부터 2014~2015시즌까지 세 시즌은 연속으로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6~2007시즌과 2014~2015시즌에는, 남들은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통합우승을 이뤄냈다.
들어올린 우승컵도 대단하지만 이제 그는 최장수 감독으로 남아있다. KBL 감독 역사상 그보다 많은 시간을 감독으로 보낸 사람은 없다. 올 시즌 개막전이던 지난 14일 부산 KT와 경기에선 KBL 사상 처음으로 1천경기(전자랜드 시절 297경기 포함)를 기록했다. 당분간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
유 감독은 1천 경기 돌파에 대해 "사실 주위에서 이야기를 해줘서 알게 됐다"면서도 "생각해보면 참 많이 한 것 같다. 오래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순간 순간이 생각났다. 예전에 같이 했던 홍사붕이나 구병두, 이창수 등이 떠올랐다. 크리스 윌리엄스도 마찬가지"라면서 웃었다.
홍사붕은 인천 SK 빅스 시절 그가 직접 불러들였던 포인트가드였고 구병두는 모비스에서 사제지간이었다. 한때 'KBL 최고령 선수'였던 이창수와 2005~2006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윌리엄스도 그에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챔피언결정전 3연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KBL 리그 구조상 3연패가 정말 쉽지 않다. 선수들의 병역 문제도 있고 성적이 나면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들을 못 뽑는 것도 있다"면서도 "뽑은 선수들이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 "솔직히 쉽지 않은 시즌…현실적 목표는 6강"
그는 2015~2016시즌부터 팀의 리빌딩도 염두에 두고 있다. 주축 양동근과 함지훈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는 있지만 전성기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시즌 국내선수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이종현을 뽑은 후 함박웃음을 지은 것도 현실과 맞물린 결과였다.
그러나 올 시즌의 모비스는 좀처럼 상위권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인터뷰 다음날인 28일 전자랜드와 경기에서도 74-86으로 패했다. 현 시점에서 3승 4패를 거두면서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유 감독은 "솔직히 이야기하면 힘든 것이 사실"이라면서 올 시즌 초반의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멤버 구성의 밸런스가 잘 맞지 않는다. 주전 중에 함지훈과 이종현, 마커스 블레이클리와 레이션 테리의 경우, 높이는 있는데 세밀함에서 조금 부족하다. 패스나 드리블이 좋으면 득점 루트를 만들기는 좋을텐데 (세밀함이 부족하니) 디테일한 부분에서 득점을 만드는 과정이 좋지 못하다. 이를 잘 돌아가게 하려면 바깥에서 지원이 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좀 더 보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포워드 전준범이 최근 외곽포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자 "물론 좋긴 하지만 강팀이 되려면 그것만 기대할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마침 이날 인터뷰 직전 현대모비스는 서울 SK에 포워드 류영환과 2017 국내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3순위 지명권을 주고 외곽포를 보유한 가드 박형철과 2라운드 7순위 지명권을 받아왔다. 유 감독은 "외곽 보강 차원에서 데리고 온 것이 맞다. 드래프트가 내일 모레인데 사실 순위도 좋지 않다. 고육지책으로 데리고 왔다"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아무래도 힘들 것을 예상했다.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현실적으로 6강을 목표로 하려고 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리빌딩에 대해서도 "솔직히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선수 수급이 자유롭지 못한KBL 시스템의 탓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공백을 느끼는 부분은 올 시즌 G-리그 이리 베이호크스에 입단한 이대성의 빈 자리였다. 유 감독은 "이대성이 빠져서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드래프트 픽이라도 잘 나왔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다음 시즌 군 복무가 예정된 전준범이 빠지는 것도 "어려운 부분"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유 감독은 그간 드래프트 후순위에서 뽑은 선수들을 정상급 선수로 성장시켜왔다. 대표적인 예가 2007년 1라운드 10순위였던 함지훈이다. 그는 10순위 선발 선수 최초로 최우수선수를 수상하는 영예를 맛보기도 했다. 2라운드 1순위롤 뽑힌 김동량도 백업 빅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사실 선수들을 키운다고 표현을 많이 하는데 그게 아니라 본인들이 성장하는 것"이라면서 "결국 선수들은 뛰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주 빼어난 선수가 없으니 뛸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뜻과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한다는 뜻이 공존했다.
이어 "우리 팀에 오는 선수들은 대부분 그동안 딴 팀에서 기회가 없었던 선수들인데 그런 선수들이 기회를 얻으니까 성장하고 활약을 했던 것"이라면서 "어느정도 기본이 되어있는 선수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런 게 없어서 걱정이기도 하다"면서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 감독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살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 예를 들면 감독을 언제까지 해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는 "'그때그때 처해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가 좌우명"이라면서 "리빌딩도 마찬가지"라고 분명히 말했다.
올 시즌은 분명 현대모비스 그리고 유재학 감독에게 있어 어려운 상황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시즌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막바지의 순위표에 현대모비스의 이름이 어디에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늘 그랬던 것처럼 팬들은 유재학 감독의 만수(萬手)가운데 한 수를 바라고 있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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