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9월19일 원주공설운동장.
5승10무7패 승점 20의 홈 팀 현대와 7승8무5패 승점22로 2위를 달리고 있는 포철과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후반 17분, 스코어는 2-1로 어웨이 팀 포철이 앞서고 있었다.
장신 선수에 유난히 약한 현대는 이날도 예외없이 포철의 장신 센터포워드 김홍운(188cm)에게 전반 31분, 후반 2분 연속골을 허용, 우세한 경기를 펼치면서도 스코어에서는 끌려 다녀야 했다.
전반 31분 첫 실점으로 이어진 패스미스를 범한 김삼수대신 투입된 32살의 노장 이상철의 기지에 찬 플레이가 순간적으로 펼쳐진 것은 그 때였다.
이상철은 2-1의 리드를 지키려는듯 지연플레이를 펼치는 포철 진영을 부지런히 헤집다 남기영이 GK 조병득에게 백패스 하는 것을 가로 챘다.
단숨에 포철 골문 앞까지 질주한 이상철은 텅빈 골문 앞에 볼을 정지시킨 것과 동시에 자신의 움직임도 멈췄다.20여m 밖에서 남기영과 조병득이 망연자실하고 있을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포철 선수들의 기를 죽이기 위한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처음에는 몸을 뒤로 돌려 뒷발로 밀어 넣을까하다 그민 뒀죠." 이상철은 절을 하듯 넓죽 엎드리더니 골라인에 멈춰있던 볼을 머리로 밀어 넣어 골인시켰다.
그 순간 관중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주심이다. 당시 주심을 맡았던 이도하씨는 "분명 비신사적인 행위였기에 옐로카드는 분명한데 골로 선언할 것인 지, 노골로 할 것인 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그러나 프로라는 측면에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 골로 인정했다."고 회상했다.
이상철은 이로써 국내 프로축구 사상 처음으로 골을 넣고 옐로카드를 받은 선수가 됐다. 그러나 이상철을 옐로카드보다 더 곤혹스럽게 한 것은 소속 팀 조중연감독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이었다.
"골인 되기전 행위가 비신사적이었다면 마땅히 노골이 돼야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조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왜 골로 인정했느냐며 주심에게 이색항의를 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포철 선수들의 이후 플레이는 전혀 달랐다.
포철 남기영은 "축구 선수를 하면서 그토록 약이 오른 적이 없었다. 반드시 이겨 이상철의 콧대를 꺽어 놓고 싶었다."며 그 때처럼 포철 선수들이 혼연일체가 된 적이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이상철로부터 농락당한 포철은 전원 공격을 펼치다 후반 23분 이길용의 골로 3-2로 앞서 나갔고 28분에는 윤성효의 면도날 같은 스루패스를 받은 최상국이 현대 GK호성호를 제치고 텅빈 골문에 차 넣어 4-2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최상국은 "현대 GK 호성호를 제치고 난 뒤 나도 이상철처럼 해볼까 하다가 참았다. 대신 그물이 찢어져라하고 세차게 슛, 울분을 달랬다."고 했다.
현대는 2분 뒤 강태식의 핸드볼 반칙으로 얻은 페널티킥을 이상철이 성공시켜 4-3으로 따라 붙었으나 포철의 공격은 의외로 드세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
현대는 이튿날 경기에서도 2-1로 패해 홈경기에서 2연패하면서 2위 도약의 꿈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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