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가출 소녀 소현(이민지 분)에게 그리운 사람은 오로지 자신을 돌봐주던 남자친구 정호(이학주 분)였다. 잠이 든 사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정호가 사라지자, 소현은 언젠가처럼 혼자가 된다. 그리고 문득 돌아본 곁에는 소현처럼 정호를 좋아했던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 분)이 있다.
제인과 소현은 나란히 정호를 그리워한다. 두 사람은 정호를 백방으로 수소문하지만, 이미 다른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들을 부담스러워한다. 제인은 가출 청소년들을 돌봐주며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마음 붙일 곳 없던 소현도 쉼터에서 나와 이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강압적 질서가 있는 '가출팸'과 달리, 제인의 공간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소현은 이 곳에 마음을 누이고 싶지만, 세상은 그를 쉽게 보듬어주지 않는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초청작 '꿈의 제인'(감독 조현훈)은 주인공 소현의 꿈과 현실,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듯한 구성을 취한다. 소현과 제인의 만남과 이별, 소현이 경험하는 또 다른 공동체, 과거의 기억을 찾아 정호와의 공간으로 향하는 소현의 모습, 제인을 떠올리며 쓴 소현의 편지 등은 때로 서사의 연결 고리가 되기도, 시점의 구분선이 되기도 한다.
그 덕에, '꿈의 제인'은 올해 초청된 비전 부문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관객의 해석이 분분한 작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영화를 깊숙이 받아들이는 데에 논리적 완결성을 퍼즐처럼 맞추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인물들이 각자 혹은 함께 그려내는 고독과 희망의 정서가 서사의 인과성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현의 발가락과 제인의 성기로 대유되는 인물들의 결핍, 무고한 지수의 불행으로 그려지는 허망한 비애는 사건의 배열 방식과는 무관하게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기 충분하다.
그저 마음 붙일 곳이 필요했던 한 소녀가 버림을 받고, 사랑을 느끼고, 다시 혼자가 되는 이 일련의 이야기에서 삶은 결코 자비롭지 않다. 그러나 감독은 세상이 아닌 소녀의 안에서 희망을 찾는다. 조현훈 감독이 말하는 '꿈의 제인'은 "그 소녀의 안에도 희망이 있다고,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만든 영화"다.
이하 '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과 일문일답
-'꿈의 제인'의 관객 반응이 좋다고 들었다. 올해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는데, 관객과의 대화(GV)를 경험한 소감이 궁금하다.
"감독의 입장에선 관객을 많이 만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부산에서 느낀 것은 관객들의 에너지가 워낙 대단하다는 점이었다. '꿈의 제인'은 거의 다 매진이었다. 올해 영화제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해도 내년엔 더 좋아지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희망하게 됐다. GV가 있는 상영관 복도에 앉아서, 혹은 일어서서 참여해주는 것을 보니 굉장히 적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경험한 다른 영화제들에서 느끼지 못한, 차원이 다른 태도와 에너지였다. 영화를 사랑해주는 관객의 마음이 놀라울 만큼 감동적이었다.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매년 참석할 예정이다."
-영화가 쉽지 않다는 반응도 많은데, 감독의 생각이 궁금하다.
"(물론 '꿈의 제인'이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떤 영화는 즐겁고 명쾌하지만 어떤 영화는 그렇지 않다. 구조적 형식보다는 이 인물들의 감정, 외로움, 고립감 같은 것에 이입하다보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보다는 슬프다거나 가슴 아프다는 이야기가 좋더라. 그렇게 봐 주시면 좋을 것 같다."
-해석하기에 따라 열려 있는 서사인데, 여러 해석을 의도하고 연출한 것인지 혹은 감독이 애초 생각해 둔 정답이 있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데, 헷갈리도록 의도하며 만든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이야기가 각 관객에게 어떻게 다르게 작용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 느끼는지는 각자의 몫이길 바랐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다른 해석을 하길 원했던 것이다. 그것이 연출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의도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원칙이나 논리 구조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렇게나 사람들이 납득하기 힘든 방식으로 만들어놓고 '알아서 해석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게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람객들이 '혼란스럽다' '이거냐, 저거냐'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반응은 의도한 바였다. 그래서 GV에서와는 별개로 리뷰를 읽어보면 해석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관되게 느끼시는 부분이 있더라. 결국 이것들은 소현의 욕망이 투영된 이야기 아닌가. 현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들은 그런 장면들일 것이다. 관객들이 내가 의도한 바와 비슷한 방향으로 관람해주신 것 같다."
-'꿈의 제인'이라는 제목은 비전 부문에 초청된 타 감독들이 부러워한 제목이기도 했다. 멋지고 간결하다는 평이 많았는데, 원래 제목 '뉴월드'에서 '꿈의 제인'으로 제목을 바꾼 이유는 뭔가.
"꿈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의 꿈으로 읽히지 않길 바랐다. 중의적으로 표현되길 원한 것이다. '꿈 속의 제인' 류의 제목이 만들어지다가 '꿈의 제인'이 됐다. 뭔가를 '꿈꾸다' '희망하다' 두 가지 뜻을 중의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민했다."
-트랜스젠더 역을 소화한 감독 겸 배우 구교환과 제 몸에 꼭 맞는 연기를 한 이민지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구교환 배우의 경우 '남매의 집'(감독 조성희)에서 보여준 연기가 인상적이더라. 연기하시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불완전한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는 연기에 능하다 생각했다.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연이 닿았다. 같이 이야기해봤을 때 구교환이 제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따뜻했다. 너무 배역을 사랑해주시더라. 내가 요구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노력해 10kg 이상의 체중을 감량하기도 했다. 노력해줬고, 작업도 길었다.
이민지는 늦게 합류한 면이 있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때문에 일정이 바빠 조심스럽게 요청했었다. 요즘은 밝은 배역을 많이 연기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와 별개로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들은 주로 이야기 안에서 생각거리를 찾을 수 있는 작품들이더라. 드라마를 동시에 진행하면서도 다른 연기를 해보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으니 그런 상황들이 잘 맞아 합류하게 됐다."
-앞서 GV에서 평소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 왔다고 이야기했는데, 구체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
"살면서 각자 개인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20대 중반에 개인적인 어려운 일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바뀌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내가 마지막으로 만든 단편을 제외하고는 더이상 자기연민을 이야기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의 문제를 떠나서도, 이제는 내 개인의 이야기보다는 외부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 사회에서 약자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어린 친구들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렇다. 심지어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문제는,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아도 이미 너무 만연해있다. 그 아이들과 만나는 일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자주 가던 지역에 그 아이들이 모여 살고 있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도 많았고 이들을 통해 쉼터 역시 찾아가게 됐었다."
-다음 작품 계획도 궁금하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영화를 다시 도전하고 싶다. 그 자체가 모호한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그렇다. 연출자 입장에서 그런 영화를 만들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꿈의 제인'의 결말은 비극적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결국 이 아이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알 수는 없다. 그에 대한 마지막 답을 하자면, 소현이 제인의 연설 속 말들을 품고 사는 아이지만 그 안에서도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소녀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있어야 한다고, 그럴 수 있어야만 한다고."
***별첨. 무대 위 제인의 연설 중 일부 : "특히나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 곁을 떠났어요. 그들 중 몇 명은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넌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거야. 넌 사랑받기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거든'. 그래서 저는 혼자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한 번 행복하면 됐죠. 그럼 된 거예요. 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 오래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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