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유승민(34, 삼성생명 코치)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모든 여건이 그에게 불리했지만 선수위원에 도전했고 당당히 성공했다.
유승민은 19일(한국시간) IOC가 발표한 선수위원 투표 결과에서 총 1천544표를 얻어 후보자 23명 가운데 2위에 올라 상위 4명까지 주어지는 선수위원에 당선됐다.
지난달 24일부터 이번달 17일까지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의 투표로 치러진 선수위원 선거에서 펜싱의 브리타 하이데만(독일, 1천603표), 탁구의 유승민, 수영의 다니엘 지우르타(헝가리, 1천469표), 육상 장대높이뛰기의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1천365표)가 당선돼 오는 2024년까지 8년 임기의 선수위원 활동을 한다.
한국 탁구의 전설인 유승민은 2004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에서 왕하오(중국)를 꺾고 금메달을 얻는 등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1, 은메달 1,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탁구계에서야 유승민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전세계 스포츠계 전체로 확대하면 인지도에서는 경쟁자들에 밀렸다.
국내에서 선수위원 후보 선발 과정 자체도 쉽지 않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 역도 금메달 장미란, 사격의 신 진종오와의 치열한 내부 경쟁에서 이긴 유승민이 IOC 선수위원 후보가 됐다.
지난달 리우에 도착한 그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홍보했다. IOC가 언론 인터뷰나 공개적인 유세 활동을 금지하고 있어 타 후보자들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졌던 유승민은 선수촌과 경기장을 오가며 발품을 팔았다. IOC에서 제작한 포스터만 들고 다니며 자신을 꾸준히 알렸다.
같은 아시아 후보였던 일본의 육상 스타 무로후시 고지의 존재는 어려움이었다. 무로후시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선수위원을 역임했고 2008, 2012년에도 IOC 선수위원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이번이 무로후시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국제 스포츠계에 영향력이 큰 일본세를 유승민이 이겨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무로후시를 선수위원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이 상당한 투자를 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또, 2008년에 당선된 한국인 첫 선수위원인 문대성 위원이 불미스러운 일로 직무가 정지되는 등 상황도 좋지 않았다. 유승민 스스로도 리우에서 자신을 알리면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걱정할 정도였다.
IOC의 인터넷 동영상 채널을 통해서도 자신을 소개한 유승민은 "리우올림픽 다음 대회는 아시아에서 열린다. 나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많은 선수들의 교류와 협력을 적극 도울 수 있다. 4번의 올림픽 경험과 독일, 프랑스, 크로아티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의 선수 경험이 있다"라며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인물임을 적극 홍보했다.
온 몸을 던져 선거에 임한 유승민의 당선으로 한국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국제 스포츠 외교에 공백 없이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선수위원은 IOC 위원과 동등한 자격을 얻는다. 총회에 참석해 투표권을 행사하고 각종 규정 제정이나 올림픽 개최지 선정 등 IOC의 모든 사안과 의제에 투표권을 행사한다. 열성적인 유승민의 노력이 값진 빛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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