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빨간 버스(FC서울 구단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FC서울-광주FC의 경기. 이날 경기 전 광주의 정조국(32)이 그라운드에 등장하자 일부 서울 팬들의 박수가 터졌다. 정조국은 무덤덤하게 응답하는 손짓을 했다.
정조국에게는 남다른 의미의 경기였다. 2003년 안양 LG(현 서울)에 입단해 해외 진출 때를 제외하면 팀을 떠나지 않았던 그였다. 당연히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선수대기실이나 벤치도 홈팀이 사용하는 왼쪽이 익숙했다.
그러나 올 시즌 시작을 앞두고 광주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서 정조국은 반대편 원정팀 대기실과 벤치를 사용했다. 어색한 것이 당연했다. 빨간색 서울 유니폼이 아닌 노란색 광주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은 서울 팬들에게는 낯설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정조국은 광주의 핵심 공격수가 됐고, 이날 친정팀 서울을 상대로 후반 24분 2-2 동점을 만드는 골까지 넣었다. 득점 후 뛰어와 축하하는 동료들을 물리치고 최대한 세리머니를 자제하는 등 전 소속팀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광주가 2-3으로 패한 뒤 상기된 표정을 지은 정조국은 "제 입장이 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말 아무도"라며 서울을 적으로 만나 뛴 복잡했던 마음을 표현했다. 골 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것도 "서울은 내게 집과 같은 곳이다. 서울을 생각하면 아직은 많이 힘들고 복잡하다"라고 전했다.
이미 광주 홈에서 서울과 경기를 치러봤기 때문에 마음이 정리될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원정을 오니 심란했던 모양이다. 그는 "서울을 상대로 이 경기장에서 경기하고 골까지 넣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라고 얘기했다.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서울전을 앞두고 하루에 3시간도 못 잤을 정도로 생각이 많았다. 원래 애사심이 강한데 그럴 정도로 서울에 대한 애정이 컸다"라고 설명했다.
경기 후 서울팬들은 정조국의 이름을 다시 연호했다. 정조국도 친정팀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선수대기실로 들어오는 통로에서는 함께 호흡했었던 서울의 데얀과 만나 서로 안아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데얀은 "내 친구 정조국은 광주에서도 잘 하고 있다"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많은 감정을 다 정리한 정조국은 "광주의 어린 선수들이 정말 잘 따라와 주고 열심히 한다. 앞으로 후배들과 더 열심히 뛰어서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주겠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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