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결전의 날입니다. 평가전인데 결전이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 상대가 체코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스페인에게 당한 1-6 대패의 아픔을 지워야 하는 숙제와 함께 그동안 슈틸리케호가 보여줬던 스타일을 제대로 발휘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많은 골을 내주며 위축돼 전혀 '즐기지' 못했던 스페인전과 달리 체코전은 '즐기자'는 것이 슈틸리케호의 컨셉트가 된 것 같습니다. 선수들 모두 체코전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면서 "즐기겠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석현준(FC포르투)은 "스페인전보다 더 자신감 있게 하려고 생각 중이다"라고 변화를 예고했고, 스페인전에서 유일한 골을 넣었던 주세종(FC서울)도 "부담은 없다. 내 장점을 살려보겠다"라며 편하게 경기에 나서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정말 즐길 수 있을까요. 상대팀 체코는 더욱 편해 보였습니다. 4일(한국시간) 프라하 에덴 아레나에서 열린 훈련에서 체코 선수들은 상당히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줬습니다. 훈련 15분 공개가 전부였지만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체코의 정신적 지주인 페트르 체흐(아스널) 골키퍼는 플레잉 코치처럼 후배들을 지도하며 그라운드에 몸을 던지더군요.
2만1천여 석의 에덴 아레나는 절반 이상의 표가 팔렸다고 합니다. 체코축구협회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전 마지막 경기라 다들 관심이 상당하다. 아마 모든 관중석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하더군요. 관중석 의자 자체가 붉은 색이다 보니 더 그럴 것 같기는 합니다.
경기장이 신시가지 외곽에 있어 아직 체코 축구팬들의 직접적인 열기를 느끼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경기를 알리는 현수막이 이곳저곳 설치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지 TV에서도 한국과 경기를 알리는 광고가 나오더군요. 체흐가 몸을 날리고 톰마시 로시츠키(아스널)가 골을 넣는 간단한 내용입니다. 설마 한국전에서 나올 그림은 아니겠지요?
체코 취재진은 이번 평가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미 몰타, 러시아에 2연승을 거둔 체코지만, 유럽과는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하는 한국을 상대로 골 감각을 유지하는 것과 무실점 경기를 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더군요.
특히 한국이 스페인에 크게 지고 와서 그런지 한국의 전력에 대해 약간은 의심을 하는 인상도 짙더군요. 체코 대표팀 후원사 중 한 곳인 현대자동차와의 연결고리가 아니면 이번 평가전이 성사됐겠느냐며 기자에게 묻는 체코 취재진도 있었습니다. 잉글랜드나 독일, 스페인에서 뛰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묻기도 하고요.
물론 이번 평가전은 양국 축구협회가 서로 필요성을 공감해 성사된 경기입니다. 특히 한국이 스페인과 먼저 경기를 하고 오는 것에 매력을 느껴 체코가 한국을 출정식 경기 파트너로 정했다는 것이 양 축구협회의 의견입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A매치 성사 조건은 시간이다.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더 좋은 조건을 찾게 된다. 스페인전의 경우 스페인 축구협회 실무진의 반대가 꽤 컸지만, 성사가 됐다. 체코는 한국에 대해서는 나쁘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어 좋은 그림이 그려졌다"라고 설명하더군요.
묘하게도 체코는 한국의 향기가 많이 나는 곳입니다. 2013년 대한항공이 체코항공 지분 44%를 인수해 인천~프라하 노선이 확대되면서 왕래가 부쩍 많아졌죠. 프라하 공항에는 한글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체코 최강 프로팀으로 올라서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 단골손님으로 등장한 빅토리아 플젠의 경우 두산중공업이 최대 후원사죠. 한국 자본이 많이 들어가 있고 도움이 되니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체코 방송 노바(Nova)의 레베츠키 플로랄 기자는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을 알려준다면 파벨 브르바 대표팀 감독이 2001년 한국을 5-0으로 꺾었던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요제프 초바네치 감독과 절친이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한국 상대하는 법을 전달 받았다고 한다. 한국은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니 집중력만 높이면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라고 전했습니다.
꽤 간단하면서도 의미 있는 비법 전수(?)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한국 축구의 특징을 꿰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러나 평가전인 만큼 부담을 덜고 나서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는 모릅니다. 플로랄 기자는 "토트넘에서 뛰는 소니(손흥민)는 체코에도 잘 알려진 선수다. 집중 경계 대상이다. 체흐가 잘 막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이더군요.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 한국 대표선수들의 표정은 꽤 밝았습니다. 보여줄 것만 보여주면 된다는 거죠. 특히 손흥민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습니다. 과연 체코의 유로 2016 출정식 파트너가 된 한국이 얼마나 즐기는 축구를 할 지 궁금해집니다. 특히 손흥민이 빼어난 활약으로 반전을 보여준다면 그것처럼 극적인 것도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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