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흔히 마무리 투수를 떠올릴 때 시속 150㎞를 상회하는 강속구가 연상된다. 국내 프로야구는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주로 강속구를 구사하는 투수들이 마무리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KBO리그에서는 과거 선동열, 이상훈, 구대성에서 오승환에 이르기까지 리그를 대표한 마무리 투수들이 모두 빠른공을 갖고 있었다. 현재 메이저리그만 봐도 아롤디스 채프먼을 비롯해 크레이그 킴브렐, 켄리 젠슨, 헥터 론돈 등 강속구 마무리가 즐비하다.
그러나 올 시즌 KBO리그에는 공이 빠르지 않음에도 팀 마무리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선수들이 있다. 두산 베어스의 이현승, SK 와이번스 박희수, 한화 이글스 정우람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시속 150㎞에 가까운 공을 던지는 마무리는 넥센 히어로즈 김세현, 삼성 라이온즈 심창민 정도밖에 없다.
이현승과 박희수, 정우람의 평균 최고 구속은 140㎞ 초반대다. 그럼에도 상대 타자들은 이들의 공을 쉽게 공략하지 못한다. 이현승과 박희수는 나란히 9세이브로 구원 부문 공동 선두. 정우람도 승수 자체가 적은 한화 마운드에서 고군분투하며 4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특히 박희수는 14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피안타율 1할2푼7리에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도 0.98로 수준급이다.
김용희 SK 감독은 "마무리 투수의 조건은 빠른공과 결정구, 제구력"이라며 "박희수는 공이 빠르지는 않지만 투심이라는 확실한 결정구가 있다. 제구력에 공끝까지 좋기 때문에 마무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공이 빠르지 않아도 마무리 역할을 맡기에 문제가 없는 것일까. 투수 전문가 양상문 LG 감독은 "마무리는 기본적으로 공이 빨라야 한다"고 잘라말했다. 올 시즌 활약 중인 느린공 마무리 투수들의 예를 들자 "전광판의 구속이 전부가 아니라"고 답했다.
양 감독은 "박희수나 정우람은 스피드건에 찍히는 구속보다 타자들이 느끼는 체감 스피드가 훨씬 빠르다"며 "공끝이 좋다는 얘기다. 포수 미트를 통과하는 마지막까지 공에 회전이 살아서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한용덕 두산 투수코치는 이현승을 두고 약간 다른 견해를 내놨다. 빠른공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마무리로서 타자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 공이 더 빨라지면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말도 덧붙였다.
한 코치는 "많은 경험과 변화구, 그리고 담대한 배짱이 이현승의 무기"라며 "타자들과 승부하는 요령을 아는 투수다. 그런데 지금 공이 더 빨라진다면, 빠른공으로만 승부를 보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이 나은 부분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 집단 마무리 체제를 가동하고 있는 KIA 타이거즈의 경우 후반기부터는 '뱀직구' 임창용이 팀에 가세할 예정이다. 임창용은 사이드암으로 150㎞의 빠른공을 뿌리는 투수. 후반기부터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마무리 투수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KBO리그에 더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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