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NC 다이노스의 내야수 지석훈(31)은 지난해까지 만년 백업선수였다.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력은 높이 평가받았지만 타격이 상대적으로 약해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올 시즌은 지석훈에게 잊지 못할 한 해다. 시즌 초반, 모창민이 부진에 빠진 틈을 놓치지 않고 주전 3루수 자리를 꿰차더니, 꾸준한 활약으로 프로 데뷔 첫 규정타석까지 채웠다. 지석훈의 올 시즌 성적은 타율 2할6푼7리 11홈런 46타점. 홈런과 타점 모두 데뷔 후 최다 기록이다.
그런 지석훈이 가을야구에서도 빛을 발했다. 1차전 0-7 영봉패를 당한 뒤 맞은 19일 2차전에서도 NC는 8회초까지 0-1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다. 자칫 2연패를 당하며 허무한 탈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 그러나 지석훈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8회말 선두타자 손시헌이 두산의 바뀐 투수 함덕주를 상대로 좌전안타를 때려내 만들어진 무사 1루. 이어 타석에 들어선 지석훈은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2루타를 터뜨리며 대주자 최재원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희생번트로 3루까지 진루한 지석훈은 함덕주의 폭투로 홈을 밟아 2-1로 승부를 뒤집었다.
결국 NC는 9회초에도 마운드에 오른 선발 스튜어트가 남은 아웃카운트 3개를 책임지며 2-1 승리를 확정했다.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거둔 스튜어트의 호투도 대단했지만, 8회말 결정적 2루타를 터뜨린 지석훈 없이는 이날 NC의 승리를 설명할 수 없다.
이번 플레이오프가 지석훈에게는 두 번째 포스트시즌이다. 지난해 처음 경험한 포스트시즌은 지석훈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LG와 치른 준플레이오프. 주로 백업으로 나서다 4차전에 선발 2루수로 출전했지만 안타 하나 치지 못했다. 6타수 무안타가 지난해 가을야구에서 남긴 지석훈의 성적표다.
정규시즌에서 그랬듯, 가을야구에서도 지석훈은 돋보이기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았다. 1,2차전 모두 8번타자 3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하위타순에 포진, 찬스를 해결하기보다는 만드는 자리다. 수비는 잘해야 본전, 못하면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날 지석훈은 누구보다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자신의 포스트시즌 첫 안타, 그리고 첫 타점을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뽑아냈다. 무엇보다 NC가 승리, 시리즈 전적 1승1패로 균형을 맞췄다는 점이 의미있다.
경기 후 지석훈은 "경기를 이겨서 정말 좋다, 의미있는 승리를 거둔 것 같다"며 "올 시즌 내내 기분이 좋다. 정규시즌에서 끝내기 안타도 쳐봤고, 가을야구에서 첫 안타로 첫 타점도 올렸다. 지금까지 야구를 해오면서 못했던 걸 다 경험하는 것 같다"고 기쁘게 말했다.
아직 지석훈에게는 해야 할 첫 경험이 남아 있다.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아보는 것. 앞으로 2승을 추가하면 NC는 삼성과 겨루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지석훈은 "지난해 준플레이오프와 비교해 긴장이 덜 된다"며 "여러모로 3차전부터는 더 잘 풀릴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가을까지 이어지고 있는 만년 백업선수의 찬란한 반란은 아직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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