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최대 약점이 포스트시즌 최고 강점으로 바뀔줄 누가 알았을까.
두산 베어스의 고질적인 문제거리였던 '뒷문'이 몰라보게 튼튼해졌다. 준플레이오프 4경기에서 목격됐듯 두산은 이제 9회가 두렵지 않다. 모든 건 마무리 이현승 덕분이다.
이현승은 넥센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 3경기에 등판, 모두 자신의 손으로 경기를 끝내며 1승2세이브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다. 3이닝 동안 삼진 3개를 솎아내고 볼넷 1개만 허용했다. 안타는 하나도 안 맞았다.
◆철통같은 경기 마무리
3-3 동점으로 승부를 알 수 없던 지난 10일 잠실 1차전. 연장 10회초 1사 뒤 마운드에 올랐다. 클로저의 중책을 맡은 뒤 처음 경험하는 포스트시즌. 평소 "마무리 체질이 아니다"며 손사레를 치던 모습과 정반대였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서운 집중력으로 상대 타선을 연신 잡아냈다. 서건창을 좌익수 뜬공, 고종욱을 중견수 뜬공으로 유도해 이닝을 끝냈다.
두산이 10회말 박건우의 결승타로 극적인 끝내기에 성공하면서 이현승은 구원승을 챙겼다. 다음날인 잠실 2차전. 팽팽한 투수전 끝에 두산이 3-2로 앞선 9회초. 이번에도 이현승은 마운드의 투구판을 밟았다. 김민성, 윤석민, 김하성으로 이어지는 우타 라인을 맞아 삼진 2개를 포함해 퍼펙트로 틀어막고 세이브를 챙겼다. 두산은 2연승으로 시리즈 승리의 7부 능선을 넘었다.
그리고 전날인 14일 목동에서 열린 4차전. 5-9로 패색이 짙던 9회초 두산 타선이 일거에 6점을 얻으며 11-9로 경기를 뒤집었다. '기적 창출의 순간' 역시 불펜에서 달려나온 이현승은 일체의 미동도 없이 넥센의 마지막 공격을 철통같이 틀어막았다. 첫 타자 스타이더를 삼진, 김자수를 유격수 뜬공, 마지막 타자 박동원을 중션수 플라이로 잡아내고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3경기 3이닝. 짧지만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그는 쟁쟁한 타자들을 제치고 준플레이오프 MVP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 2009년까지 몸담은 친정팀을 상대로 거둔 전과여서 의미가 남다른 수상이었다.
사실 불펜은 올 시즌 내내 두산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개막 전 마무리로 낙점한 노경은이 스프링캠프 도중 불의의 턱부상으로 이탈했고, 시즌 초반 임시 마무리로 기용한 윤명준은 부진으로 자리에서 이동했다. 고심하던 김태형 감독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이현승이었다.
사실 올 시즌을 5선발 후보로 여겼던 이현승은 지난 3월 20일 시범경기 잠실 KIA전 도중 타구에 맞아 왼손 중지 미세골절상을 입었다. 치료와 재활에 전념한 뒤 복귀한 시점은 6월초. 몇 차례 중간계투로 시험등판한 뒤 상태가 괜찮다고 판단되자 김 감독은 이현승을 마무리로 깜짝 배치했다. 그의 구위와 제구력, 그리고 경험을 모두 보유한 점을 믿은 것이다.
◆'마무리 이현승', 두산의 터닝포인트
이 선택은 두산의 올 시즌 향방을 결정한 중요한 터닝포인트로 여겨진다. '마무리' 이현승은 최근 몇년간 두산에서 볼 수 없었던 '안정감 있는 뒷문 걸어잠그기'를 연신 선보였다. 간혹 불안한 모습을 노출할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꾸준히 마지막 이닝을 무사히 마치면서 리그의 수준급 클로저로까지 입지를 굳혔다.
특히 지난달 22일 롯데전부터 시즌 마지막 등판인 지난 3일 잠실 KIA전까지 5경기에서 1승 4세이브를 기록하며 급피치을 올렸다. '가을 무대'에서도 이런 모습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고조됐고, 그는 선수단의 믿음에 확실히 보담한 것이다.
이현승은 "기적이 현실이 된 것 같다"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우리 팀이' 미러클 두산'이란 별명에 걸맞게 기적을 만들어내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만날 NC에 대해 "넥센 만큼 강한 타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도 이제 약한 투수 아니다. 강한 투수다"며 "또 기회가 온다면 지켜낼 자신이 있다. 기대도 된다"고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이현승을 마무리로 발탁한 김 감독은 "MVP 자격이 충분하다. 현승이가 이런 활약을 해주는 게 후배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거다. 일단 마운드에 올가면 무척 믿음직하다"고 대견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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