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남자 우진은 알 수 없는 이유 탓에 매일 다른 얼굴로 잠에서 깨어난다. 때로 시선을 잡아 끄는 잘 생긴 외모의 청년이, 때로는 어젯밤까지 입고 있던 바지가 잠기지 않을 만큼 살이 찐 모습이 되어 있다.
성별이라도 일관적이라면 그나마 덜 곤란할텐데 어느 날은 아리따운 숙녀로, 어머니 뻘 아주머니로 깨어나기도 한다. 귀는 한국어에, 입은 외국어에 열린 외국 사람이 되는 일도 다반사다.
다니던 학교를 그만둬야 했고 친구도 꼭 한 명만 남게 됐지만, 우진은 이 거짓말 같은 상황에 거짓말처럼 적응하며 살아간다. 가구를 만드는 재주를 발견했고, 나름의 성공을 거두며 공방을 꾸민다. 매일 다른 얼굴로 깨어나는 것은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어느새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한 눈에 마음을 빼앗아 간 여자 이수(한효주 분)를 만나기 전까지.
영화 '뷰티 인사이드'(감독 백, 제작 용필름)는 칸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 상을 수상한 소셜필름 '더 뷰티 인사이드'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독특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멜로 영화로, 매일 얼굴이 바뀌는 남자 주인공 우진 역을 무려 21명의 배우가 연기해 제작 단계부터 화제가 됐다. 지난 3일 언론 배급 시사를 통해 국내 첫 선을 보인 뒤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실험적인 서사와 캐스팅이 신선한 감흥으로 이어진 결과다.
우진은 아름답고 우아한데다 친절하기까지 한 여인 이수를 만나 첫 눈에 반한다. 내일의 성별도, 국적도, 나이도 예상할 수 없는 우진이지만 용기 내 이수에게 다가가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우진의 비밀은 둘 사이의 위기가 되기도,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상상조차 하기 낯선 상황 속 우진과 이수의 고민은 제목이 시사하는 직관적인 메시지와 만나 보편성을 획득한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그대로인 내면의 아름다움, 그리고 상대를 향한 신뢰는 연인의 관계에 가장 중요한 열쇠다. 영화적 설정 안에 있는 우진과 이수에게 뿐 아니라 그 어떤 평범한 연인에게도 필요할 법한 미덕이다.
물론 주요 로맨스 장면에서 우진 역의 배우들(박서준, 이진욱, 서강준 등)이 하나같이 잘 생긴 스타들이고, 이 대목이 영화의 주제 의식과 엇나간다는 비평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통통한 체격의 김대명과 개성파 배우 김상호가 스스로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우진의 모습을 연기하는 순간들도 마찬가지다. 영화적 장치나 영리한 배치라고만 보기엔 아쉬운 감상을 남긴다.
그러나 화자인 우진의 갈등과 고민에 집중하다보면 시선은 조금 너그러워진다. 많은 얼굴로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온 우진은 자신의 외모에 따른 타인의 시각차를 내면화한 인물. 영화는 어떤 얼굴로 깨어나든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주제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간다.
영화가 지닌 또 한 가지의 미덕은 짧지만 임팩트 있는 장면들을 통해 의외의 배우들에게서 멜로의 기운을 잡아냈다는 점이다. 이진욱, 서강준, 유연석, 김주혁 등 멜로 장르로도 익숙한 배우들 뿐 아니라 김민재, 조달환, 김희원, 김대명 등 그간 코믹하거나 거친 이미지로 다가왔던 이들에게서도 로맨스를 읽어냈다.
'뷰티 인사이드'가 완성도 있는 멜로로 탄생하게 된 데에는 배우 한효주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더없이 우아하고 매력적이어야 하는 인물 이수를 부족함 없이 그려냈다. 물오른 미모와 차분한 기운으로 우진을 이해하고 껴안는 감정을 때로 로맨틱하게, 때로 절절하게 표현했다. 특히 우에노 주리와 호흡한 장면은 두 배우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감흥을 느낄 정도다.
영화가 이수의 내레이션을 통해 묻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가. 우리의 내면은 매일 바뀌는 우진의 외면보다 과연 영속적인가. 우진이라는 남자의 특별한 조건은 '뷰티 인사이드'를 판타지 멜로라는 장르에 가두지만 우진과 이수의 만남, 이별, 재회는 여느 연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영화는 특수한 설정으로부터 보편적 메시지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영화에는 이수 역의 한효주를 비롯해 김대명, 도지한, 배성우, 박신혜, 이범수, 박서준, 김상호, 천우희, 우에노 주리, 이재준, 김민재, 이현우, 조달환, 이진욱, 홍다미, 서강준, 김희원, 이동욱, 고아성, 김주혁, 유연석, 이동휘, 문숙, 이경영 등이 출연한다. 오는 2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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