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한국이 연일 불볕더위로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가운데 기자는 지난달 31일 중국 우한행 항공기에 올랐습니다. 1일부터 시작되는 201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취재를 위해서 2시간 30분여를 날아왔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과 함께 탄 항공기가 우한 톈허(天河)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공항 문을 열고 나서자 뜨거운 태양이 환영 인사를 합니다. 하루 이틀 먼저 우한에 입성한 타사 기자 동료들이 워낙 덥다며 겁을 주는 바람에 긴장하고 갔습니다.
사실 뭐 얼마나 덥겠느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과거 해외 출장지를 떠올려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떠났던 스페인 출장에서는 론다라는 도시에서 한낮 기온 43도를 경험해 봤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출장에서도 뜨거운 태양을 느껴봤고요. 또, 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 한국-이탈리아의 축구경기가 열렸던 중국 친황다오에서 100%에 가까운 습도도 경험해봤습니다.
그런데 처음 접한 우한의 날씨, 일단 심상치 않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기자와 함께 숙소로 이동한 현지 교민은 "오늘은 바람도 불고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라며 여유를 보입니다.
우한은 충칭, 난징과 함께 중국 3대 '화로'로 불린다고 합니다. 얼마나 더우면 화로라고 할까요. 우한에 근무하거나 거주하는 주재원이나 교민들은 8월 초면 귀국해 휴가를 즐긴다고 합니다. "8월 초 우한에서 축구가 말이 되느냐. 우한의 8월 초는 중동 수준이다"라는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던 것이죠.
우한은 화로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입니다. 시 중앙으로 창강(江)이 가로지릅니다. 강으로 뻗는 지류는 모두 호수에서 시작된다고 하네요. 크고 작은 호수만 무려 170여개나 된다고 합니다. 호수의 도시라 불릴 만하죠. 총면적의 4분의 1이 물이니 습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췄습니다.
그나마 인근에 중국 최대의 수력발전소인 싼샤(三峽)댐이 있어 덜 더워졌다고 합니다. 최대 저수량이 390억톤이니 우한으로 흘러가는 수량을 줄여 도우미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과거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날 우한 지역 최고 기온은 중국 CCTV의 기상 보도를 참고하면 36도, 습도 68%였습니다. 앞으로 일주일간 우한의 평균 최저 기온은 26도, 평균 최고 기온은 37도라고 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열대야와 한낮 불볕더위가 계속되는 셈이지요. 더워도 감기에 걸릴까봐 숙소 에어컨도 제대로 틀지 못하는 대표팀 입장에서는 우한의 더위가 그야말로 고역일지도 모릅니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공식 기자회견 취재를 위해 이동을 한 시간이 오후 3~4시 사이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더위에 상의를 위로 올리고 배를 내밀고 다니는 중국인들은 여전히 보입니다. 더위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견디는 것이지요. 당연히 그런 행동을 못하는 기자의 등줄기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숨이 조금씩 막혀 옵니다.
경기장으로 이동해 오후 6시부터 공식 훈련을 시작한 대표팀은 1시간 30분 가까이 빡빡하게 몸을 풀었습니다. 훈련복이 땀에 젖어 무거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지열이 올라옵니다. 연습장 잔디는 스프링쿨러가 작동을 하지 않아 물을 머금지 않은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일단 선수들은 이 정도면 견딜 수 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습니다. 이정협(상주 상무)은 "특별히 덥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도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라고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도 고온, 습도와 싸워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알렝 페렝 중국 감독의 말이 걸작입니다. "기후에 상관없이 뛸 준비가 되어 있는 팀이 좋은 팀"이라고 합니다. 슈틸리케 감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페렝 감독이 우리와 함께 서울에 있다가 우한으로 왔다면 기온 차이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핑곗거리를 찾지 않고 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치르니 상황을 받아들이겠다"라며 무더위 극복을 다짐했습니다.
과연 슈틸리케호 태극전사들은 화로에서 익지 않고 견뎌내며 마지막에 웃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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