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지난 시즌 신인이던 김하성(넥센 히어로즈)에게 강정호(피츠버그)는 거대한 산이었다.
김하성에게 주어진 역할은 강정호의 휴식시간을 보조하는 백업 유격수였다. 대수비나 대주자로 많이 나섰다. 와중에 넥센은 '포스트 강정호'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즌 후면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염경엽 넥센 감독이 김하성을 한국시리즈 출전 선수 명단에 포함시킨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기회는 쉽게 올 것 같지 않았다.
피츠버그에 입단하며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강정호의 빈자리는 김하성이 아닌 윤석민에게 돌아갈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40홈런을 친 강정호가 빠졌기 때문에 아무래도 타선의 무게감은 떨어졌다. 염 감독은 두 자릿수 홈런이 충분히 가능한 윤석민이 강정호의 공백을 대신 해주기를 바라고 그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그런데 올 시즌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넥센 주전 내야수인 서건창과 김민성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교통정리가 필요해졌다. 김하성에겐 기회가 온 것이다.
김하성은 스프링캠프에서 수비에 초점을 맞춘 훈련에 열을 올렸다. 타격보다는 안정된 수비로 팀에 보탬이 되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상 선수가 잇따라 김하성이 유격수로 선발 출전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방망이가 잘맞고 있다. 시즌 초반 페이스가 떨어진 때도 있었지만 최근 5경기 연속 안타로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2할대까지 떨어졌던 타율은 어느덧 3할3푼8리(71타수 24안타)로 올라갔다.
김하성은 2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홈런을 2방이나 쏘아올렸다. 넥센의 역전패로 빛이 바랬지만 시즌 3, 4호 홈런을 기록하며 유한준(7홈런) 박병호(5홈런)에 이어 팀내 홈런 3위로 올라섰다. 같은 날 강정호도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멀티히트와 3타점 2루타를 기록했다.
김하성은 "선배들이 잘 치기 때문에 그 효과를 보는 것 같다"며 "최근 컨디션이 좋긴 하다"고 웃었다. 시즌 초반이지만 타격 지표를 살펴보면 강정호의 빈자리를 김하성이 쏠쏠하게 메우고 있다.
22일 현재 팀 내 가장 많은 안타를 친 타자가 바로 김하성이다. 김하성은 24안타로 박병호와 유한준(이상 23안타)보다 안타수가 많다. 2루타도 유한준, 윤석민, 문우람과 같은 7개로 최다다. 장타율은 6할 6푼을 기록해 규정타석(58타석)을 채운 넥센 타자들 중 유한준(7할9푼7리) 윤석민(7할4리)에 이어 세 번째다.
김하성은 테이블세터로도 기용되다가 최근에는 하위타순인 8번타자로 나오지만 이쯤되면 상대 투수들이 만만히 볼 타자가 아닌 것이다. 그는 "심재학 타격코치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며 "지금에 만족하지 않겠다. 그래도 타격보다는 수비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김하성은 등번호를 0번에서 7번으로 바꿨다. 이성열(외야수)과 함께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허도환(포수)이 달던 번호다.
공교롭게도 등번호를 교체한 뒤 타격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는 "3경기 동안 10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고 했다.
의기소침해졌지만 이제 다시 활력을 찾았다. 지난 19일 치른 KIA 타이거즈전에서 4안타를 몰아치며 한 경기 개인 최다안타를 작성햇고 두산과 치른 두 경기에서 멀티히트를 쳤다. 부상선수가 많아 걱정인 넥센 타선에서 김하성은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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