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대전 시티즌 조진호 감독의 올 시즌 목표는 내용과 결과를 모두 얻는 '공격 축구'였다. 현역 시절 시원한 드리블과 슈팅을 앞세웠던 조 감독의 공격적인 스타일을 지도자 입문 후에도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지난해 챌린지(2부리그)에서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클래식 승격이라는 절실함이 강했던 대전은 아드리아노를 중심으로 공격을 시원하게 풀어 나갔다. 챌린지에서 대전의 공격력을 뛰어넘는 팀은 없었고, 대전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승격의 꿈을 이뤄냈다.
그러나 다시 진입한 클래식 무대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대전은 전력 누수도 있었다. 임창우는 울산 현대로 임대 복귀했고 정석민은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전력의 핵심 아드리아노는 비자 문제로 일본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했다. 의욕만 가지고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외풍이 심한 구단의 환경에도 적응해야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 대전은 개막 4연패에 빠지며 힘든 시즌 초반을 보냈다.
대전은 11일 울산과의 K리그 클래식 5라운드에서 1-1로 비기며 시즌 첫 승점 1점을 획득했다. 조진호 감독은 "지난해야 성적도 잘 나오고 별 문제가 없었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하니 말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지만, 성적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대전의 고전에는 부상자 속출이 주요 원인이 됐다. 조 감독은 부상자 발생에 대해서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포항에서 임대해 온 이광훈이 시즌 준비 도중 부상을 당했다. 김찬희, 히칼딩요, 윤원일 등 주전 자원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했다.
울산전에 출전한 수비수 김기수, 김상필 등은 모두 '이 대신 잇몸' 격이었다. 이들은 온몸을 던져가며 팀의 4연패를 끊는데 애를 썼다. 특히 김상필의 움직임은 인상적이었다. 울산전까지 단 두 경기 출전에 불과한 2년차 K리거였지만 손을 내젓고 목이 쉬도록 외쳐가며 파이팅을 독려했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는 동료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선수들의 이런 마음가짐을 잘 아는 조 감독도 궤도수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축구야 플랫4에 기반을 둔 공격 축구지만 '현실'이 조 감독의 의지를 꺾었다.
그 '현실'에는 클래식의 평균에 못미치는 전력 열세를 인정하는 것과 함께 외풍에 시달리는 구단 문제도 포함돼 있었다. 합리적인 전력 구성을 위해 만든 선수선발위원회가 전득배 사장이 지적한 4연패의 원인으로 치부되면서 이에 반발하는 프런트와 갈등이 생겼다. 프런트가 들고 일어나 전 사장의 개편안에 반대 의사를 밝히는 등 대전 구단은 흔들리고 있다. 선수단을 이끌고 있는 조 감독은 이런 구단 상황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남자가 됐다.
선수선발위와의 협의를 통해 영입한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해 있으니 그야말로 답답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구단 사장의 생각에 가타부타 말을 하기도 어렵다. 전 사장은 2월 대전구단에 부임한 뒤 완벽하게 선수단과 사무국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팀이 4연패로 위기에 몰리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단을 정비하려다 반발에 부딪혀 한 발 물러섰다. 울산전 종료 후에는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나섰다가 거친 말을 듣기도 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조 감독도 결국은 현실을 인정하고 전술 운영 등에서 변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울산전에서 나름 효과를 본 '선 수비 후 역습'을 앞세운 실리축구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조 감독은 "원래 내 스타일은 울산전처럼 수비적이지 않은데 선수들이 4연패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부상자만 돌아오면 플랫4에 기반을 두고 공격적인 전술로 골을 넣어야 하는데, 지금은 수비적으로 해서 역습을 통해 골을 넣어야 한다"라며 현실을 자각한 축구를 구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일부 대전 팬들은 홈에서 너무 수비적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지만 조 감독과 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전은 앞으로 FC서울-포항 스틸러스-수원 삼성 등 줄줄이 강팀과 만난다. 이들 팀들의 공격력은 클래식 정상급이다. 조 감독의 실리 축구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 감독은 "선 수비 후 역습 등 상황에 따라 경기 운영을 해야 한다. 이런 스타일을 이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이상을 버리고 현실적인 축구로 돌아가는 대전과 조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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