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몸은 괜찮아요. 그런데…"
시즌 개막전을 2시간 앞둔 지난달 28일. 이재우(두산)는 멋쩍게 웃었다. 어디 아픈데는 없냐는 질문에 그는 몸이 아닌 머리가 복잡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해가 됐다. 지난해 여러가지 요인이 겹치며 11경기(37.2이닝) 등판에 그쳤다. 2년 전까지 선발투수로 뿌리를 내리는듯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의욕 마저 잃을 정도였다. 연봉협상에서는 2천500만원 삭감의 된서리를 맞았다. 딱 1억원으로 '억대연봉 선수'라는 타이틀은 간신히 유지했지만 자존심에 꽤 큰 금이 갔다.
◆순조롭지 못한 출발, 그러나
시즌 출발도 순조롭지 못했다. 당초 마무리 및 5선발 후보로 여겨졌지만 그의 보직은 불펜의 중간계투로 정해졌다. 프라이머리 셋업맨도 아닌 롱릴리프 및 미들맨이 그의 역할이다. 점점 밀려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시범경기에선 기대와 달리 연일 맞아나갔다.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 때 이재우는 마음을 다잡았다. 한때 잘 나갔던 과거, 누구보다 팀에 공헌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서운함 등을 모두 지우기로 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후회없이 공을 던지자고 마음 먹었다. 투수진의 최고참으로, 절대 무너지면 안 되는 위치였다.
그러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운드에서 던지는 공에 힘이 넘쳤다. 공 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지난 1일 대전 한화전에 시즌 첫 등판, 1.2이닝 동안 탈삼진 2개로 무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자신감이 생겼다.
이튿날에도 같은 팀을 상대로 또 마운드에 올랐다. 이번에는 2이닝 동안 7명의 타자를 상대해 삼진을 무려 5개나 솎아냈다. 볼넷 1개만 허용했을 뿐 한화 타선의 누구도 이재우에게서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다.
이틀간 그가 거둔 성적은 3.2이닝 7탈삼진 1볼넷. 12타자 상대로 안타와 실점은 '0'이었다. '리그 최상급 셋업맨' 이재우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인 듯했다.
이재우는 "마음을 비우니 공이 제대로 들어가더라.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잘 던지려고 했다"며 "첫 출발을 잘 해서인지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어떤 역할이든 주어진 상황에서 내 몫을 다하겠다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지난해에는 여러모로 힘이 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올해에는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선수들 사이에 가득하다. 투수 최고참인 나부터 팀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각오"라고 했다.
◆"매일 행복하다는 생각 뿐"
이재우가 계속해서 힘을 내줄 경우 두산은 불펜의 깊이가 더욱 탄탄해진다. 마무리 윤명준이 기대 이상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다 셋업맨 김강률도 그간의 모습에서 탈피해 경기 후반 안정감을 더해주고 있다. 여기에 이재우가 옛 모습을 어느 정도 재현해줄 경우 당초 구단 안팎에서 우려했던 불펜 문제는 급속도로 사라질 수 있다.
김태형 감독은 "이재우의 공에 힘이 있더라. 선발보다 불펜에서 더 좋은 공을 던지는 게 보였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개막 로스터를 고민하던 시점에도 "이재우는 당연히 개막 명단에 포함된다"며 돈독한 믿음을 나타냈다.
이재우는 "보직은 상관 없다. 개인이 아닌 팀이 더 중요하다. 처음 프로에 어렵게 들어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많은 것을 이룬 편이다. 매일 매일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긍정의 힘'으로 재무장한 이재우가 두산에 새로운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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