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수원 삼성 골키퍼 노동건(24)은 고려대 출신으로 2011 콜롬비아 20세 이하(U-20) 월드컵을 경험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수원은 노동건을 정성룡(30) 이후를 대비하는 자원으로 생각하고 지난해 자유계약으로 영입했다. 수원 유니폼을 입은 노동건은 지난해 4경기를 소화했다.
그 4경기 중 노동건이 잊을 수 없는 경기는 11월 22일 전북 현대와의 일전이었다. 지난해 노동건이 마지막으로 골키퍼 장갑을 낀 경기였다. 정성룡이 A대표팀 차출 등으로 부재한 상황에서 치른 경기였고, 노동건은 강력한 공격력의 전북을 상대로 나름대로 선방하며 잘 견뎠다.
하지만, 후반 44분 1-1 동점 상황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수비수가 볼을 걷어낸다는 것이 잘못 맞아 노동건에게로 향했다. 의도적인 백패스가 아니라는 점에서 손으로 잡아도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볼이 오는 것을 본 노동건은 순간적으로 백패스라 생각하며 잡지 않고 흘려보냈고, 이는 코너킥이 됐다.
성인 무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실수가 아니었다. 이어진 코너킥에서 정혁의 중거리 슈팅이 골로 마무리되면서 수원은 1-2 패배라는 쓴맛을 봤다. 2위를 한 수원의 순위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노동건에게는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수원의 스페인 말라가 전지훈련에서 노동건은 '조용한 독사' 신범철 골키퍼 코치로부터 혹독하게 조련 당했다. 정성룡이 A대표팀에 차출돼 아시안컵에 참가하는 사이 노동건은 단내나는 동계훈련을 했다. 골키퍼들은 오전, 오후 가리지 않고 휴식도 없이 날마다 훈련이었다.
수원은 올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규리그, FA컵 등 나설 대회가 많아 노동건은 정성룡과 분담해 출전해야 한다. 훈련 후 노동건의 유니폼에는 얼룩이 없는 경우를 보기가 힘들었다.
마침, 노동건에게 귀중한 기회가 왔다.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우라와 레즈(일본)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이다. 정성룡이 무릎 부상으로 나서지 못해 노동건이 수원 골문을 지키게 된다.
단기전 승부인 챔피언스리그에서 골키퍼의 중요성은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안다. 수원은 2년 전 챔피언스리그에서 정성룡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후보 골키퍼 양동원이 가시와 레이솔(일본)전에 나섰다가 2-6 대패의 쓴맛을 본 경험이 있다. 당시 수원은 무승으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망신을 당했다.
노동건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마침 올해는 을미년이자 양의 해다. 양띠인 그는 좋은 기운과 함께 할 수 있는 해다.
노동건은 우라와전을 하루 앞뒀던 24일 "지난해, 그리고 2013년 가시와전 패배는 과거다. 모두 잊었다. 빨리 털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정성룡 못지않은 여유를 보였다.
물론 우라와전은 당연히 긴장된다. 우라와는 3천명 이상의 열성 원정팬이 올 것으로 알려졌다. 광적인 응원전이 예상된다.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한 노동건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노동건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첫 경기이고 챔피언스리그 개막전이라 긴장을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프로다운 경기력으로 팬들 앞에 나서야 한다"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서정원 감독도 노동건에게는 확실한 기회 제공을 약속하며 동기를 부여했다. 노동건은 "감독님이 믿겠다고 하시더라. (정)성룡이 형이나 나나 그 어떤 선수가 나가도 차이가 없도록 준비하고 있다"라며 강력한 선방쇼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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