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차두리(35, FC서울) 열풍'이다.
지난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차두리는 폭발적인 질주로 한국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했다. 이 장면 하나가 이번 아시안컵에서 차두리 열풍을 불게 만들었다. 아시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피드, 탄력, 피지컬을 앞세운 차두리의 화끈한 플레이가 한국 축구팬들의 마음을 흔들어버린 것이다.
차두리에게 마음을 뺏긴 팬들은 열광하고 있다. 골을 넣지 못하고, 경기력이 좋지 못해 약간은 침체됐던 대표팀의 분위기가 차두리로 인해 180도 바뀌었다. 또 차두리로 인해 반신반의했던 한국의 아시안컵 우승에 대한 열망과 믿음도 더욱 높아지게 됐다. 차두리 효과는 대표팀에 많은 긍정적 변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 차두리의 대표팀 '연장'에 대한 바람이 커졌다. 차두리가 처음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을 때 팬들의 아쉬움은 컸다. 그 때 역시 차두리가 더 오랫동안 대표팀 생활을 지속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전 이후 그런 바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압도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선수,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폭발력을 지닌 선수가 이렇게 빨리 대표 은퇴하는 것에 마음이 시렸던 것이다. 이별이 아쉬운 것이다. 차두리는 아직 충분히 몇 년 더 지금처럼 뛸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 그래서 차두리의 은퇴를 팬들이 말리려 하고 있다. 국가대표 차두리를 아직 놓아줄 수는 없다고 외치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 청원 게시판에는 '차두리 선수 국가대표 은퇴 반대합니다'라는 청원 운동이 펼쳐지고 있을 정도다. 한국 축구팬들이 얼마나 차두리를 간절히 원하는지, 차두리의 은퇴에 얼마나 큰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팬들의 바람에도 차두리는 은퇴를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팬들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지만 차두리의 은퇴 의지는 존중돼야 한다. 축구선수 차두리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축구 선수가 아닌 한 '인간' 차두리의 인생도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차두리의 은퇴 결정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고심하고 또 고심했고, 주변의 조언도 수도 없이 들었다. 당초 지난해 현역 은퇴를 하려 했다. 아시안컵도 출전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위해 희생하자는 결심이 섰고, 그래서 아시안컵을 태그마크를 다는 마지막 무대로 결정한 것이다. 그동안 국가대표에서 차두리는 충분히 헌신하고 희생했다. 한국 축구의 최고 영광 속에는 항상 차두리가 있었다. 또 태극마크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도 빛낸 이가 차두리였다.
이런 차두리에게 지금 경기력이 좋으니 대표팀에 더 헌신하라고 하는 것은 '욕심'이다. 국가대표가 아닌 차두리의 인생, 태극마크를 내려놓은 후 차두리가 설계하고 있는 인생이 그에게는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차두리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찾아갈 수 있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차두리와 아름답게 이별해야 한다. 지금 차두리를 잡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한국 나이로 36세. 한국 대표팀 최고령에,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령으로 아시안컵에 출전하고 있는 차두리다. 어떤 축구 선수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차두리가 은퇴를 하려는 이유를 많은 나이, 체력 저하 등 '몸'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아니다. 차두리는 체력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앞으로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경기를 뛰는데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물론 차두리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다. 예전과 분명 체력도 떨어지고 회복 속도도 늦어졌다. 하지만 경기를 뛰는데 지장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때문에 그는 체력적인 문제로 은퇴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 차두리는 은퇴를 선언할 당시 "체력적으로는 큰 이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차두리는 왜 은퇴를 결정한 것일까. 여타 다른 선수들처럼 나이로 인해 체력이 안 돼서, 몸이 따라주지 않아 그라운드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차두리의 은퇴는 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었다. 자신이 대표팀에 남아 있는 것이 스스로 욕심이라 여기는 마음 때문이다. 후배들의 자리를 빼앗은 것 같은 무겁고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자신이 빛나면 후배들이 그늘로 가려질까 마음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은 충분히 대표팀의 영광을 누려봤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그 영광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은퇴 결정의 가장 큰 이유였다.
이런 차두리의 마음을 헤아려줘야 한다. 그렇기에 국가대표 차두리를 이제 놓아줘야 한다. 차두리를 붙잡는 것은 그의 진심, 따뜻한 마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제 팬들이 할 일이 있다. 차두리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이다. 차두리는 "나는 마지막까지 대표팀을 도와야 하고 대표팀을 위해 뛰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마지막에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아시안컵 우승을 하면 너무나 기쁠 것 같다. 나의 은퇴경기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우승을 하는 경기가 돼야 한다"며 아시안컵 우승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차두리의 은퇴경기가 4강전 이라크전이 아닌 결승전이 되기를, 그리고 차두리의 은퇴 선물이 아시안컵 우승컵이 되기를 진심을 다해 응원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차두리와 '아름답게 이별'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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