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공한증(恐韓症)'은 중국 축구가 한국 축구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축구는 한국과 만나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며 극도의 공한증을 앓아야 했다. 중국은 한국을 27번 만나는 동안 11무16패를 기록했다. 한국을 만나는 중국은 승리를 잊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중국의 공한증은 깨졌다. 지난 2010년 2월 동아시안컵에서 중국은 한국을 3-0으로 무너뜨렸다. 중국은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에 승리를 거두는 기쁨을 누렸다. 당시 한국은 국내파 위주의 멤버였고 중국은 최정예 멤버들을 총동원했다. 어쨌든 한국은 졌고 중국은 이겼다. 중국에게 공한증은 깨졌다.
공한증이 깨진 후 2013년 동아시안컵에서 한국과 중국은 다시 만났고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공한증을 벗아나 2경기 연속 한국에 패하지 않으니 중국 축구의 사기는 올라갔다. 중국은 이제 공한증에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속으로는 무서워도 겉으로 당당한 척 하려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전보다 공한증의 무게감이 떨어진 것은 확실하다.
이번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공한증에서 한층 가벼워진 모습을 드러냈다. B조인 중국은 조별예선에서 2연승을 거두고 일찌감치 조 1위를 확정지었다. 중국의 8강 상대는 A조 2위다. A조의 한국과 호주가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 중국은 도발적인 행태를 취했다. 8강에서 만나고 싶은 상대로 한국을 지목한 것이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공한증이 깨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국 축구와 중국 축구의 수준차는 분명 있다. 그런데도 중국은 한국과의 대결을 원한다고 했다. 개최국 호주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중국 입장에서 이제 더 이상 한국은 극도로 두려워할 만한, 공한증을 앓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공한증은 사라진 것일까. 아니다. 공한증은 말 그대로 해석하면 '한국을 두려워하는 증상'이다. 따라서 중국에 국한된 증상이 아니다. 중국에서 시작해 대표적으로 거론됐지만 그동안 공한증은 다른 국가로도 전이됐다. 중국의 공한증이 가벼지고 있는 형국이지만 중국 못지않게 공한증을 앓고 있는 국가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 공한증을 가장 심하게 앓고 있는 국가는 어디일까. 바로 '우즈베키스탄'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아시아 축구의 신흥 강호로 평가 받고 있는 팀이다. 만만한 팀이 아니다. 언제든지 아시아의 전통적 강호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지닌 팀이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은 한국만 만나면 작아졌다.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의 천적이었고,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의 제물이었다. 한국을 위협할 만한 축구로 성장한 우즈베키스탄이지만 승리는 챙기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이 한국에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승리는 너무 오래됐고,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을 잘 모를 때 벌어진 일이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첫 만남, 이 경기가 우즈베키스탄이 한국에 승리한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였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4강전,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을 만나 0-1로 패배했다. 당시만 해도 '미지의 팀'이었던 우즈베키스탄에 일격을 당한 것이다. 한국의 첫 번째 패배이자 마지막 패배였다.
이후 한국은 단 한 번도 우즈베키스탄에 패배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은 단 한 번도 한국에 승리하지 못했다. 10번 만나 한국이 8승2무를 거뒀다. 압도적인 승률이다. 우즈베키스탄은 공한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공한증을 앓던 우즈베키스탄에는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최근 경기였던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을 상대하며 2경기 연속 자책골을 넣었다. 홈 경기는 자책골로 2-2 무승부를 거뒀고, 한국 원정은 자책골로 0-1로 패배했다. 공한증이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운명의 장난인가, 한국은 2015 호주 아시안컵 8강전에서 현재 가장 극심한 공한증을 앓고 있는 상대를 만나게 됐다. 한국의 8강 상대는 우즈베키스탄이다.
아쉽게도 한국을 만났으면 했던 중국의 바람은 무산됐다. 한국은 호주를 꺾고 A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중국도 한국을 만나지 못해 아쉽고, 한국 역시 다시 한 번 중국에 공한증의 공포를 선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아쉽다. 그렇지만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의 공한증을 더욱 무겁게 만들 수 있는 기회 앞에 섰다.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오는 22일 호주 멜버른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8강전. 이 경기에서도 공한증은 이어져야 한다. 한국은 4강에 올라서야 한다. 이제 공한증은 우즈베키스탄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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