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한국 축구대표팀의 아시안컵 여정이 순탄한 듯 하면서도 험난하다. 조별리그 두 경기에서 2승(2득점 무실점)을 거두며 8강 진출을 조기 확정했지만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오만과 쿠웨이트를 상대로 조별리그 1, 2차전은 모두 1-0으로 이겼지만 과거처럼 일방적이지 않았다. 기록상으로도 대등했다. 슈팅수나 볼 점유율에서 한국이 압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한국 축구의 위상에 비춰 기록과 내용을 본다면 실망스러운 결과다.
이청용(볼턴 원더러스)의 부상 이탈과 구자철(마인츠05), 손흥민(레버쿠젠),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등의 감기몸살로 선수들의 컨디션이 제각각인 상황이 되면서 마치 대표팀 전체가 엉망이 된 것처럼 비치고 있다.
대표팀은 이중적인 시선에 갇혀있다. 지난 4년 동안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대표팀에 대한 기억은 어느새 희미해진 가운데 아시아에서는 정상권 팀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에 기대 또다시 단기 성과를 내라는 압박이 경기를 치를수록 커지고 있다.
아시아 대회인데 우승에 대한 욕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8강에서 탈락이라도 하게 된다면 슈틸리케 감독을 바꿔야 한다는 성급한 인터넷 댓글도 눈에 띈다. 당장 17일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패하면 8강에 가도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힐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매 경기 투지를 불사르는 이전의 시원하고 힘 넘치는 한국 축구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동정론이 일고 있다. 이미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확인한 상태에서 지휘봉을 잡은 슈틸리케 감독이 팀 조련 4개월만에 힘들게 아시안컵을 치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기자회견에서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그는 "승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은 티키타카가 승리의 요인이 될 수 있고 어떤 날은 롱볼 축구를 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팀으로의 변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호주전에 대한 구상은 훈련을 통해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무리를 하기보다는 이미 8강이 확정된 이상 그 이후를 염두에 두고 일부 선수는 회복 훈련 프로그램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8강 토너먼트부터가 진짜 승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주력 선수를 아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슈틸리케 감독이다.
8강에서 누구를 만나든 이겨서 4강에 진출하면 되는 토너먼트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이다. 내용은 차차 업그레이드하면 된다.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며 경기력을 서서히 회복시켜주는 것이 앞으로 결선 토너먼트를 치러야 하는 대표팀 입장에서는 훨씬 중요하다. 한국이 약체나 다크호스 정도로 평가받는 월드컵에서는 첫 경기부터 힘을 쏟아 조별리그 통과부터 해야 하지만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아시안컵에서는 8강 이후부터 집중해도 충분하다.
대회가 끝나면 내용보다 우승을 누가 했는지, 최종 성적이 어땠는지가 더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대표팀의 궁극적인 목표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아시안컵은 월드컵으로 가는 과정 중 하나로 보면 된다.
대회에 참가하면 당연히 우승을 위해 뛰는 것이고, 한국은 55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바라는 우승을 이번에 이뤄내지 못해도 크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현 대표팀에는 단기 성과보다는 지속적인 발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차분한 시선으로 대표팀의 선전을 응원해줄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