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외국인 선수와의 이별을 맞는 각 구단의 자세가 달라지고 있다. 쉽게 말해 구단 이기주의가 사라지는 추세다.
넥센 히어로즈는 지난달 25일 스나이더의 영입을 발표했다. 스나이더는 올 시즌 LG 트윈스에서 뛰었던 외야수. 정규시즌 땐 부진했지만 포스트시즌 들어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한 선수다.
LG는 어느 정도 검증된 스나이더와의 재계약보다 스나이더보다 더 나은 선수를 찾기로 결정했다. 이 경우 두 가지 선택지가 LG에게 주어진다. 하나는 스나이더를 임의탈퇴로 처리해 타구단 이적을 막는 방법, 또 하나는 웨이버 공시를 통해 자유의 길을 터주는 방법이다.
LG는 스나이더를 웨이버로 공시, 타구단 이적의 길을 열어줬고 넥센이 그를 영입하며 다시 한 번 한국 팬들 앞에 설 수 있게 됐다. 규모가 작은 넥센의 홈 목동구장에서 스나이더의 장타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벌써부터 솔솔 풍겨나오고 이다.
비슷한 경우가 최근 또 있었다. 한화 이글스가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재계약 의사를 전달받지 못한 유먼을 영입한 것. 한화는 지난 5일 유먼과의 계약을 정식 발표했다. 유먼은 올 시즌 예년만 못한 구위를 보여주며 롯데의 재신임을 얻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롯데 역시 유먼을 웨이버로 공시하며 한화 이적을 간접적으로 도왔다.
유먼 역시 아직은 쓸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 지난 2012년 한국 무대 데뷔 후 올 시즌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렸다. 올 시즌 성적은 12승10패 평균자책점 5.93. 타고투저를 감안하면 그리 나쁜 성적도 아니었다. 특히 외국인 선수도 조련해서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김성근 감독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스나이더가 LG와의 경기에서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때리는 장면, 유먼이 롯데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는 장면이 다음 시즌 펼쳐질 지 모른다. LG와 롯데로서는 가장 두려울 수 있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LG, 롯데는 좋은 선수를 안전장치 없이 떠나보냈다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LG와 롯데는 그런 비난을 감수하기로 했다. LG 양상문 감독의 말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한국야구의 '위상'과 '이미지'를 위해서다. LG는 리오단 역시 재계약하지 않을 경우 보류권을 풀어줄 계획이다.
양 감독은 "우리 팀이 안 쓴다고 다른 팀 이적을 막아버리면 밖에서 볼 때 한국 야구를 욕하게 된다"며 "이제 한국 야구도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해 가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 선수를 갖고 안 좋은 소리가 나오면 한국야구의 위상과 이미지를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LG는 스나이더가 풀릴 경우 넥센 또는 롯데에서 관심을 가질 것이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 감독은 한국야구의 위상을 이유로 웨이버 공시를 주장했고, 백순길 단장도 양 감독의 뜻을 존중해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넥센의 스나이더'가 탄생할 수 있었다. 롯데가 유먼을 풀어준 배경 역시 LG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재계약하지 않을 외국인 선수의 경우 임의탈퇴로 처리해 타구단 이적을 막았다. 혹시 다른 팀에 가서 좋은 활약을 펼칠 경우 재계약 포기에 대한 비난이 빗발칠 것을 두려워했던 것. 이런 관습은 실제로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 한국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하나의 이유로 작용해왔다.
관련 규정이 손질 돼 임의탈퇴 시 한국 내 타구단 이적 불가 시한이 5년에서 2년으로 축소됐지만 여전히 임의탈퇴는 외국인 선수들의 한국 내 재취업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물론 임의탈퇴 규정이 없다면 자금력에서 앞서는 구단이 외국인 선수까지 끌어모을 수 있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동안 구단 이기주의로 규정을 악용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양상문 감독의 결정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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