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근기자] 확실히 눈높이가 높아졌다. 일본 오리콘차트 1위에 놀랐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이젠 좀 심드렁해졌다. 싸이가 미국 빌보드 메인차트 7주 연속 2위라는 기록을 썼기도 했거니와 아시아 음악시장에서 K팝 열풍이 그만큼 오래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때 오리콘차트를 국내차트화 시켰던 K팝은 이제 빌보드차트에 종종 이름을 올리고, 동방신기로 촉발된 아이돌의 아시아 시장 진출 러시는 서서히 더 큰 시장인 미국을 향하고 있다.
한류가 예전만 못하다는 위기론도 있지만, 이는 흐름에 휩쓸린 물량공세에서 완성도를 갖춘 질적 공략으로의 변화, 그리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의 변화로 인한 현상이기도 하다. 또 K팝 한류를 이끈 주역인 아이돌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현 상황과 맞물려있기도 하다.
K팝 한류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국내에서 아이돌을 대체하고 있는 다양한 음악의 성패가 관건이다. 해외에서 K팝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이 승부처다.
◆아시아를 집어삼킨 아이돌 10년
1990년대 후반 H.O.T, 젝스키스를 시작으로 신화, S.E.S, 핑클 등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아이돌의 부흥기가 시작된 해는 10년 전인 2004년으로 동방신기가 데뷔한 해다. 동방신기의 탄생과 성공으로 인해 수많은 아이돌그룹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완성형 아이돌'로 평가받았던 동방신기는 국내를 넘어 일본 및 아시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한 번 길이 열린 일본 시장에는 국내 아이돌의 러시가 이뤄졌다. 국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아이돌의 다음 수순으로 일본 진출은 당연시됐다.
2010년경부터 아이돌 포화상태라는 말이 나왔지만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살아남았다. 국내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일본에서는 톱스타로 군림한 초신성 같은 사례도 생겨났다.
2010년 전후로 일본에서 전성기를 맞았던 아이돌 열풍은 한풀 꺾였지만 이미 입지를 구축한 이들의 인기는 여전히 폭발적이다. 동방신기, 빅뱅 등은 여전히 일본 투어로 수십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진입장벽은 높아도 충성도 높은 일본 팬들 특성 때문이다.
많은 관계자들이 "현지에서 입지를 다져놓은 가수들의 인기는 지속되겠지만, 한류를 등에 없고 진출하면 비교적 손쉽게 관심을 끌던 시대는 갔다"고 입을 모은다.
포화 상태를 이미 넘어섰던 아이돌 시장은 '믿는 구석'이었던 아시아에서 K팝이 주춤하자 급격하게 거품이 빠지고 있다. 2014년 가요계는 그 현상이 뚜렷해졌다. 한때 차트를 도배했던 아이돌의 이름은 현저하게 줄었다. 그 자리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채워지고 있다.
◆싸이의 위대한 유산, K팝 한류가 나아가야 할 길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온라인으로 전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현지에 진출하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아도 국내에서 내실을 다지면 해외에서도 주목한다는 것이다. '싸이 효과'도 있겠지만 이는 소녀시대, 빅뱅, 2NE1 등을 통해 더 확실해지고 있다.
일본 시장에서 K팝에 대한 '무조건'적인 관심은 수그러들었지만 오히려 미국 등 서구에서의 관심은 늘었다. 빌보드와 할리우드 리포터의 사장 재니스 민은 최근 방한해 "빌보드와 할리우드리포터에서 한류가 광적으로 기사화되고 큰 이슈가 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빌보드 등 미국 언론에서는 꾸준히 K팝 관련 기사가 나오고 있고, 주목할 만한 가수나 활약한 가수 및 노래 등에 K팝이 꼽히고 있다. 유튜브에서 K팝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폭발적이고, 빌보드 메인차트에서도 K팝이 순위권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수들의 미국 공연도 활발해졌다. 동방신기와 빅뱅은 이미 미국 단독콘서트 경험이 있고 수만 명의 관객을 모을 정도로 티켓파워도 입증됐다.
한 발 더 나아가 미국 팝스타들과의 협업도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싸이가 스눕독과 협업을 했고, 지드래곤이 미시 엘리엇과, 다이나믹듀오가 디제이 프리미어와 작업했다. 또 2NE1 씨엘은 스쿠터브라운과 손잡고 미국에 진출할 계획이라 현지 가수들과의 협업이 기대된다.
국내 앨범으로 현지에서 주목받기도 하고, 현지 아티스트와의 협업 그리고 아이돌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점에서 K팝의 미국 진출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는 K팝이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한 관계자는 "K팝의 위상이 커진 지금이 아시아를 넘어 미국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며 "이 시기를 놓친다면 K팝은 다시 아시아 내로, 또 국내로 갇혀버릴 수 있다. 싸이가 만들어 놓은 이 길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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