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축구에서 골키퍼는 포지션 특수성으로 인해 쉽게 주전이 바뀌지 않는다. 최후의 수비수이면서 전체와의 호흡을 잘 맞춰야 하기에 동료들에게 익숙함과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김진현(27, 세레소 오사카)은 다소 미흡했다. 10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 전까지 A매치 2경기에 출전해 5실점한 것이 전부다. 지난 2012년 5월30일 스페인과의 평가전이 김진현의 국가대표 데뷔전이었는데 4실점하며 1-4 패배의 아픔을 맛봤다.
지난달 5일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에서는 좋은 선방 능력을 보여주며 3-1 승리를 이끌기는 했지만 골킥 실수한 장면 때문에 확실한 신뢰를 얻지는 못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정성룡(수원 삼성), 김승규(울산 현대)에 이어 세 번째 골키퍼로 이범영(부산 아이파크)과 경쟁해왔던 그다. 그런 김진현이 슈틸리케 감독의 데뷔전에 선발 골키퍼로 출전했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진현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0㎝의 신장과 긴 팔을 이용해 파라과이전에서 수 차례 선방을 했다. 후반 6분 네스토르 오르티고사의 중거리 슈팅을 몸을 던져 선방한 뒤 29분 호르헤 로하스의 슈팅도 걷어냈다. 후반 막판 상대와의 일대일 위기도 침착하게 방어했다. 동료들의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선방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도 해낸 것이다.
한국의 2-0 승리로 경기가 끝난 후 파라과이의 빅토르 헤네스 감독은 "한국 수비가 조직적으로 잘했다. 아주 좋은 골키퍼를 가졌다. 파라과이도 여러 차례 공격 기회를 얻었지만 골키퍼가 잘 막았다"라며 김진현을 호평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오늘 경기는 6-3으로 끝났어야 했다"라고 진단했다. 한국이 골 찬스도 많이 놓쳤지만 적어도 3실점할 위기를 막아낸 김진현의 선방이 돋보였다는 뜻이다. 자신이 공약했던 무실점 경기를 김진현이 수호해준 것도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김진현 개인에게도 의미있는 경기였다. 사실 분위기는 대표팀 넘버1 골키퍼 김승규의 출전이 유력했다. 김승규는 아시안게임에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전경기 무실점으로 금메달을 이끌었다. 브라질월드컵 벨기에전의 활약으로 대표팀 수문장의 중심은 김승규라는 이미지까지 굳혔다. 'NO 3'였던 김진현에게는 넘기 힘든 산이었다.
소속팀의 상황도 김진현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일본 J리그의 강호 세레소는 올 시즌 부진을 거듭해 강등권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김진현은 대표팀 소집 직전 치른 시미즈 S-펄스전에서 3실점하며 패배의 쓴맛을 봤다. 팀이 힘드니 개인의 안정성을 찾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파라과이전 냉철한 활약으로 대표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새로운 팀을 만들어가는 슈틸리케호에서 자신의 지분을 확보하며 흥미로운 골키퍼 주전 경쟁을 예고했다. 넘버1 위치 탈환을 노리는 정성룡(수원 삼성)이 소속팀의 순위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앞으로 골키퍼 부문 경쟁은 더욱 재미있는 구도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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