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이란 농구는 2000년대 중반부터 중동을 대표하는 실력자로 급부상했다. 높이와 스피드까지 모두 갖추며 중국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게 됐다.
그 사이 한국은 어정쩡한 상황에 놓이면서 정체기에 빠졌다. 프로농구는 승리에만 몰두하는 전술에 집중하다보니 개성이 없어졌다. 높이가 있는 선수도 수비 중심의 농구에 물들어 득점력이 떨어지는 등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반면, 이란은 달랐다. 미국프로농구(NBA) 경험이 풍부한 218㎝의 장신 하메드 하다디(28)를 앞세워 한국을 압도했다. 한국은 2005년 카타르 아시아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이란을 이긴 이후로는 한 번도 이란에 승리하지 못했다. 가장 최근 겨루기였던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하다디가 30득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한국을 76-65로 울렸다.
운명처럼 한국과 이란은 3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전에서 재회했다. 상대적으로 한국의 복수심이 더 컸다. 하다디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루키 이종현(고려대)이나 김종규(창원LG)는 물론 김선형(서울 SK)에게도 큰 압박이었다.
이들은 결승전을 앞두고 "하다디를 죽기 살기로 막겠다"라고 선언했다. 유재학 감독도 이란의 높이와 스피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물음표를 던질 정도로 하다디 중심의 이란의 힘은 대단했다.
하다디는 4강전까지 충분히 이름값을 했다. 카자흐스탄과의 4강전에서 4쿼터 10점 차의 열세를 뒤집을 때는 결정적인 리바운드로 기여했다.
그런데 한국전에서 하다디는 굼떴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힘든 경기를 해야 했다. 하다디가 볼을 잡으면 서너 명이 달려들어 슛을 방해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파울도 감수하며 팀플레이로 하다디를 괴롭혔다. 유재학 감독 특유의 드롭존 전술을 시도해 하다디를 고립시키는 등 최대한 힘을 뺐다. 김선형은 하다디를 정면에 두고 과감하게 골밑을 파고들어 득점하는 등 자신감을 뽐냈다.
하다디가 별 역할을 해주지 못하니 이란의 득점력도 떨어졌다. 전반까지 하다디가 한 것은 2득점 3리바운드 1도움에 불과했다. 그만큼 한국의 수비가 효과적이었다는 뜻이다. 외곽으로 나가는 패스도 막아내니 하메드 아파그, 마디 캄라니 등도 득점이 막혔다. 한국 선수들은 닉 카바라미에게는 대량 득점을 내주면서도 나머지 선수들은 잘 차단했다.
3, 4쿼터에도 하다디가 자랑하는 리바운드는 통하지 않았다. 당황한 나머지 패스미스를 저지르는 등 흔들렸다. 이날 한국 선수들의 모습은 2002 부산 대회에서 장신의 야오밍(중국)을 막기 위해 몸을 던졌던 것과 같았다. 하다디는 두 손을 무릎에 대고 힘든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만큼 한국은 유기적으로 하다디를 잘 막아냈다. 하다디는 종료 40초 전 결정적인 골밑슛에 실패하는 등 갈수록 힘이 빠진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흐름을 놓치지 않은 한국은 막판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며 이란을 제압, 2002 부산 대회 이후 12년 만에 금메달을 손에 넣는 쾌거를 이뤘다. '하다디 무력화'에 유재학 감독과 선수들이 합심해 성공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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