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화기자]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데도 박해일은 몹시 신중했다. 그도 그럴것이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의 주연배우로 영화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참 조심스러운 노릇이다.
박해일이 내놓는 새 영화는 10년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줄기세포 조작 이슈를 모티브로 한 실화영화 '제보자'(감독 임순례)다. 타이틀롤인 제보자 심민호 역은 유연석이, 박해일은 심민호의 제보를 받고 진실을 추적하는 시사 프로그램 PD 윤민철 역을 맡았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의 실체를 파헤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이번 영화에서 박해일은 한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 끈질긴 근성의 시사 프로그램 'PD 추적'의 PD를 연기했다.
과거 조작 논란의 한가운데 섰던 줄기세포 관련 이슈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디테일하게 그린 이번 영화에서 박해일은 실제 방송국 PD를 만나고 취재 현장을 견학하는 등 모든 것들을 몸소 느끼며 캐릭터를 설계했다.
"실제로 취재 과정을 경험해 보니, 반 형사같은 느낌이었다. 수박겉핥기식의 체험이었지만 잠깐만 경험해 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더라. 기자라는 직업은 제보를 접하고 이것을 취재할 것인가 아님 접을 것인가 취사 선택하는 판단력도 빨라야 하고 센스도 있어야 한다. 근성은 물론이고. 잠깐 맛봤지만, 그들만의 세상에 대한 이해랄까, 조직사회에 대한 민감한 부분 등을 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험이 됐다."
첨예했던 사회적 문제를 영화로 만든 '제보자'는 언론의 공정성과 진실, 그리고 초심이라는 점에 중점을 둔다. 각종 외압과 국민 정서에 반하는 핍박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위해 뚝심있게 나아가는 인물들이 진중하게 그려진다.
"진실은 도덕책같은 말로 당연히 찾아야 할 것이 맞다. 하지만 대다수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고충을 알 것도 같다. 세상만사가 내 마음 같지 않다라는 생각, 조직사회의 논리같은 것을 생각하게 된 계기었다."
박해일은 "영화를 찍고 홍보하는 시점에서 많은 기자를 만나게 되는데, 내가 과연 언론인을 연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마침 언론인 캐릭터 제안을 받고 연기를 하게 되면서 너무 즐겁게 연기를 했다. 근성있는 인물을 그려내려 노력했다"고 '제보자' 속 연기를 설명하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받고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10년 전 이슈를 되짚어 보며 작품을 틀을 짠 적인 있다. 그 작품의 큰 틀 안에서 윤민철이라는 캐릭터를 맞춰야 하니까. 작품과 사실을 전환하는 시점이 필요했다. 미리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연기하는 내 자신이 헷갈릴 수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작품에만 신경 쓰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있었던 사건과 연관지어서 대화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 영화는 영화일 뿐, 허구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과 실화에 대한 논란 여지에 대해 박해일은 "가상의 작품으로만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못박았다.
박해일은 10여년 전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현재 시점에서 다시 상기해도 좋을만한 사건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과잉되지 않고 담담한 톤으로 당시 사건을 극화한 작품에 대해 박해일은 "임순례 감독의 성향"이라고 설명했다.
"데뷔작인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다시 임순례 감독님과 작업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영화를 할 이유가 충분했다. 관객을 향한 강요나 과잉의 감정 없는 영화의 색깔은 감독님의 시선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작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감독님의 성향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그렇다."
"10여년만에 다시 만난 임순례 감독님은 더 깊어지고 더 유연해졌다.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더 단단해지신것 같다. 반갑고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혈기왕성한 데뷔작 이후 10여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청년의 모습을 간직한 박해일. 서른 여덟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푸른 젊음을 느끼게 하는 그는 "이러다 훅 간다"며 "겉은 이래도 속은 많이 늙었다"고 웃었다.
영화에서 언론인의 자세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천만영화 '변호인'을 연상시킨다는 말에 박해일은 "좋은 연관인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 '변호인'과 유사한 지점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호소하는 기능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누구나 누려야되는 권리와 기본적인 자세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입에 붙지 않는 생명 공학 용어를 대사화하는데 대한 어려움을 묻자 박해일은 "방송 용어나 생명공학 관련 부분은 영화를 두번 보면 또 다른 재미, 정복하는 맛이 있을 것"이라며 재관람을 권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 연기를 돌이켜 보면 촬영하는 과정에서 만족감이 있느냐 없느냐가 내 연기의 동력이 돼 왔던 것 같다. 그리고 과정이 만족스러우면 결과 역시 좋았다. 그런 점에서 '제보자'는 과정이 참 좋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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