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브라질월드컵이 독일의 우승으로 1개월여 장정을 끝냈다. 기본이 4강 진출인 독일은 월드컵 사상 최초 4개 대회 연속 4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정상까지 올라 꾸준한 강호로서의 위용을 다시 한 번 떨쳤다.
유럽 강호들을 쫓아가려고 했던 한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부러운 일이다. 한국은 브라질월드컵에서 사상 최초 원정 월드컵 8강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나섰지만 누적된 후진 행정에 지도자의 역량 부족, 선수들의 투지 실종이 겹치면서 조별리그 1무2패 탈락이라는 쓴맛을 봤다.
한국의 부진은 브라질월드컵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낸 팀들이 그 이유를 잘 알려줬다. 우승국 독일은 2002 한일월드컵 준우승 이후 유소년 투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각 프로팀에 유소년 팀을 의무적으로 창단하게 했다.
독일 축구협회는 지역별 전담 지도자를 양성해 작은 지역에서의 인재 발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소지역에서 시, 주, 국가 단위별로 선수들의 체계적인 양성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안드레 쉬를레(24, 첼시) 등 젊은 유망주들이 탄생했다. 독일의 유소년축구 등록 선수는 180만명에 이른다. 이들을 고르고 골라 최고의 선수로 육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우수 선수의 발굴은 분데스리가의 경쟁력 확보로 이어졌다. 분데스리가는 1970~1980년대 유럽 최고의 리그로 군림했지만 1990년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에 밀렸다. 프랑스 리그1까지 무섭게 성장하는 등 분데리스가는 외형과 내실 모두 위축돼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꾸준한 선수 발굴은 점점 리그의 질을 높였다. 2012~2013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바이에른 뮌헨-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대진으로 치러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 뮌헨이 여전한 강호이지만 도르트문트와 바이엘 레버쿠젠 등의 클럽 규모가 커지면서 리그 전체적인 질적 향상도 이뤄졌다. 이는 곧 유료 관중 증가 효과로 이어졌고 유럽리그 관중 동원 1위라는 실적으로 귀결됐다.
네덜란드 역시 독일과 비슷하다.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 준우승팀 네덜란드는 이번에도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네덜란드도 유소년 선수가 미래의 희망이라 판단하고 아약스와 PSV 에인트호번이라는 양대 클럽을 중심으로 선수 발굴에 역점을 뒀다. 멤피스 데파이(PSV 에인트호번), 달레이 블린트(아약스) 등이 탄탄한 시스템에서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프로팀 경력이 많은 루이스 판 할 감독이 지도자로서 역량을 발휘하며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뭉치게 했다. 스피드 좋은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이나 결정력 좋은 로빈 판 페르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도 팀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녹였다.
이런 네덜란드의 장점은 조별리그 스페인과의 경기로 나타났다. 패스에 기반을 둔 스페인 축구를 무력화시키며 5-1 대승을 거뒀다. 전략가 판 할이 선수단을 하나로 잘 묶었고 조별리그를 3승으로 통과했다. 이후 멕시코와 16강, 코스타리카와 8강에서는 적절한 선수기용으로 잇따라 승리를 낚았다.
판 할 감독은 아약스(네덜란드), FC바르셀로나(스페인), 뮌헨(독일) 등 주요 리그의 명문팀을 거친 숙성된 지도자다. 프로팀 지도 경험을 토대로 선수들의 기용이나 전술 등을 영리하게 구성했다. 클럽팀 경험 없이 연령대 대표팀만 소화했던 홍명보 감독에게 곧바로 성인팀 지휘봉을 맡겼던 대한축구협회의 즉흥성과 안일함이 비교되는 대목이다. '4위'의 성적으로 실패한 감독으로 낙인 찍힌 브라질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무려 24개의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거친 명장이다.
'조직력'의 중요성은 다시 한 번 부각됐다. 4강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코스타리카, 콜롬비아의 돌풍은 진정한 '원팀(One Team)'이 무엇인지 알려줬다. 특히 코스타리카는 2002 한일월드컵 당시의 한국을 연상시킬 정도로 투혼과 체력을 앞세워 이변을 일으켰다. 2002년 한국과 달리 홈에서 열린 대회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웠다. 국가대표에 대한 절실함이 무엇인지 코스타리카가 한국에 한 수 가르쳐줬다고 할 수 있다.
팀 전체를 이끄는 그라운드의 리더 역시 분명히 필요함을 알려줬다. 독일은 하나의 팀으로 움직였지만 그 뒤에는 미드필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바이에른 뮌헨)의 투혼이 있었다. 몸을 던지는 슈바인슈타이거의 강인한 정신력은 독일 선수들을 일깨웠다. 아르헨티나 역시 주장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와 미드필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FC바르셀로나)라는 지휘자가 있었다.
네이마르(FC바르샐로나)라는 리더가 빠지자 허둥거렸던 브라질의 침몰은 23인의 리더십을 외쳤지만 별 효과는 없었던 한국과 어쩌면 비슷했다. 이번 한국대표팀에는 월드컵 경험자가 5명에 불과했다. 최고의 무대에서 강팀들을 잇따라 만날 때에는 팀의 균형을 얼마나 잘 잡아야 하는지 절실하게 느낀 월드컵이었다.
이 외에도 세계축구의 전술적 흐름에서 동떨어져서는 안된다는 점, 대표선수 선발 시스템, 훈련지 선정 등 많은 면에서 고민거리와 개선점을 안겨다 준 월드컵이었다. 성적에만 목숨을 거는 한국적인 문화 개선도 여전한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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