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2014 브라질 월드컵 조편성이 되는 순간, '환호'했습니다.
한국은 H조에 편성됐고, 벨기에, 러시아와 한 조가 됐습니다. 그리고 당신들 알제리와 한 조가 됐지요. 톱시드 중에서 절대적으로 강하다고 할 수 없는 벨기에를 만나 환호했습니다. 유럽이지만 유럽의 힘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러시아이기에 환호했습니다.
환호의 '절정'은 당신들, 알제리 때문이었습니다. 아프리카 팀 중에서도 강호로 평가 받지 못하는, 월드컵 역사에서 이렇다 할 업적도 없는, 그리고 유럽파가 다수 속해 있지만 이름을 들으면 감탄사를 내뱉을 만한 선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알제리와 한 조가 돼 열정적으로 환호했습니다.
그때부터였지요. 당신들은 한국의 1승 '제물'로 여겨졌습니다. 한국의 16강 진출 시나리오에 알제리는 항상 승점 3점 자판기였습니다. 알제리를 무조건 잡고, 러시아 또는 벨기에와는 상황에 따라 비기는 전략이었지요. 알제리는 한국 입장에서 철저히 '무시' 받는 팀이었습니다. 알제리 선수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벨기에의 아자르, 루카쿠 분석하기에 바빴습니다.
외신들로 한몫 했습니다. 대부분의 외신들이 H조 16강 진출국으로 벨기에와 러시아를 지목했지요. 그런데 한국으로서 고무적인 것은 조 3위로 한국을 꼽은 것이었지요. 알제리가 H조 최약체라 평가했습니다. 간혹 한국의 16강 진출을 예상하는 언론이 있었지만 알제리는 철저히 외면 당했습니다. 한국 측의 예상과 외신의 예상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러시아만 어떻게 해보면 한국은 16강에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월드컵이 시작되자 알제리에 대한 자신감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첫 경기에서 한국은 러시아와 1-1 무승부를 거뒀습니다. 알제리는 벨기에에 1-2로 졌지요. 한국의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알제리 대표팀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불화설'이 한국의 자신감을 더욱 키웠습니다. 알제리 축구협회와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의 불화설, 감독과 선수들의 불화설, 감독과 언론의 불화설 등 알제리는 무너져가고 있는 듯 했습니다. 한국은 평가전 연패로 무너졌던 신뢰를 러시아전을 통해 다시 찾아가는 상황이었지요.
알제리 선수들이 벨기에전에서 감독이 시도했던 수비적 전술에 큰 불만을 품었다지요. 아무리 그래도 선수면 감독 말에 복종을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불만을 공개적으로 발설하는 모습을 보니, 알제리라는 팀이 붕괴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알제리 선수들의 공격적 자신감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감독의 작전에 반기를 들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알제리. 그렇기에 한국의 알제리전 승리를 당연시 했습니다. 알제리를 어떻게 이길까 보다 벨기에-러시아전 결과에 더욱 집중했지요. 벨기에가 승리해야 한국이 더욱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으니까요. 벨기에가 러시아에 1-0으로 승리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한국의 시나리오대로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국이 알제리만 이기면 됐습니다. 모든 상은 차려졌고 숟가락만 들면 됩니다. 1승 제물, H조 최약체 알제리만 잡으면 한국의 16강이 보입니다.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이 무시했던 알제리는, 그 설움을 날려버리고자 무섭게 몰아붙였고, 전반에만 3골을 넣었습니다. 한국은 알제리의 폭발적 공격력에 철저히 무너졌습니다.
결국 한국은 1승 제물, H조 최약체 알제리에 2-4로 패했습니다. 한국의 얼굴은 민망함으로 붉어졌습니다. 한국의 1승 제물이 알제리가 아니라, 알제리의 1승 제물이 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H조 최약체는 한국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알제리 선수들이 감독의 수비적 전술에 대해 왜 그렇게 불만을 드러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그들의 공격성은 H조 최강이라고 해도 수긍이 갈 정도였습니다. 물론 한국 수비가 붕괴된 이유도 있겠지만, 이것도 그들의 공격 능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페굴리의 능력은 명성 이상이었습니다. 한국전만 보면 페굴리는 벨기에의 아자르보다 위력적이었습니다. 슬리마니의 파괴력, 브라히미의 결정력, 벤탈렙의 날카로움까지, 알제리는 전형적인 공격의 팀이었습니다. 공격을 위해 태어난 팀이었습니다.
1차전 상대가 벨기에였기 때문에 움츠렸던 것이었습니다. 한국을 상대로도 그런 정도의 공격력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습니다. 마음대로 공격하라고 고삐를 풀어 놓으니 초원을 달리는 말처럼 정말 마음껏 공격했습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알제리 선수들을 한국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알제리가 벨기에전과 비교해 선발 명단을 5명을 바꾸고 한국을 상대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겠지만, 한국은 경기가 끝난 다음에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런 팀에 수비를 요구했으니, 선수들도 불만을 품을 만했을 겁니다.
2-4 한국의 패배로 경기는 끝났습니다.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참패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알제리가 한국보다 한 수 위의 팀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알제리가 H조 최약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 입장에서 알제리는 러시아보다 훨씬 더 강한 팀입니다.
한때 알제리를 무시한 것을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조에 편성됐을 때 환호해서 미안합니다. 1승 제물이라고 평가절하해 미안합니다. 한국 16강 시나리오의 희생양으로 지목해 미안합니다. 반성합니다.
한국이 무시한 상처는 4골로, 완패로 돌려받았습니다. 그리고 알제리는 역대 월드컵 아프리카 팀 최다 득점에도 성공했습니다. 아프리카 팀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한국이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제외하고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등 톱시드가 아닌 팀에 4골 이상을 허용한 것은 당신들이 처음입니다. 또 한국이 월드컵에서 패배한 최초의 아프리카 팀으로도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런 영광으로 무시당했던 것에 위안이 됐으면 합니다.
알제리로 인해 한국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월드컵에서 한국보다 약한 팀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요. 아직도 한국 축구는 월드컵 본선에 오른 그 어떤 팀도 무시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요. 어떤 조에 들어가도 다른 팀들은 한국을 1승 제물로 본다는 것을요. 한국에 최상의 조는 없다는 것을요.
한국이 알제리를 향해 1승 제물이라고 떠들 때, 알제리 선수들은 속으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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