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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의 거리', 인간적이지 않아 더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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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첫 방송, 하류 인생의 민낯 비추다

[권혜림기자] 밑바닥 인간 군상의 역동적인 인생사가 20세 차 로맨스의 강렬했던 기억을 덮을 수 있을까.

지난 19일 JTBC 새 월화드라마 '유나의 거리'가 첫 방송됐다. 지난 주 화제 속에 종영한 '밀회'의 후속으로 방영된 '유나의 거리'는 이전 드라마와 전혀 다른 색채로 안방에 첫 인사를 건넸다.

'밀회'가 상류 사회 틈입을 꿈꿨던 커리어우먼의 자기 반성으로 화두를 던졌다면, '유나의 거리'는 윗 세계와는 도통 거리가 먼 '하류 인생'의 민낯을 재치 있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통상 '인간미'로 설명되는 덕목들을 나열하지 않고도 연민과 공감에 가까운 감상을 안기는 데 성공했다. 인간적이지 않아서 더 인간적인 서사가 첫 발을 뗐다.

'유나의 거리'는 직업·성별·나이·성격까지 천차만별인 사람들과 소매치기범인 여자가 사는 다세대주택을 배경으로 한다. 이 곳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사나이가 들어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미모의 소매치기범 유나는 김옥빈이, '착한 남자' 창만은 이희준이 연기한다.

이날 첫 방송은 유나와 창만의 첫 만남을 비롯해 다세대 주택의 다채로운 인간 군상을 고루 비췄다. 평범한 이웃의 얼굴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과거를 살아 온 입주민들의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시작은 범행에 나선 유나의 침착하면서도 매서운 눈빛이었다. 지하철에서 소매치기 남수(강신효 분)의 패거리가 훔치려던 지갑에 잽싸게 손을 댄 유나는 남수 일행에게 쫓기게 된다. 폐업한 가게로 들어선 유나는 그 곳에 살고 있던 창만의 도움으로 추격을 피한다. 창만은 유나의 발에 박힌 유리 조각을 빼 준다. 유나는 창만의 거처에 휴대폰을 두고 오고,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집으로 향한 유나는 방에 들어서기도 전에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다세대주택에 입주해 살던 학원 강사가 자살을 한 것. 주민들은 이웃의 죽음에 거침없이 말을 보탠다. 총각인 줄 알고 만났던 연인이 알고 보니 유부남이어서 죽음을 택했을 것이라는 둥, 그런 일이라면 신고를 해야지 왜 자살을 하겠냐는 둥, 오가는 모든 이야기가 가볍기 그지없다.

건물 주인 한만복(이문식 분)과 홍여사(김희정 분)의 반응은 기막히다. 월세를 밀리고 세상을 등진 고인을 향해 "인간이면 이렇게 못된 짓을 하고 가는 게 아니"라고 흉을 본다. 슬픔 따위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유쾌한 장면은 아니지만 어쩐지 눈물 섞인 추모보다 현실적인 그림이다. 그나마 쓸쓸히 간 영혼을 위해 향을 피워준다던 홍계팔(조희봉 분)은 죽은 이의 노트북을 빼돌리려다 걸리고 만다.

다세대 주택에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는 장노인(정종준 분)도 산다. 한 때 도끼로 불렸던 건달 출신이다. 푸근한 동네 할아버지 같은 얼굴에 잘 걷지 못하는 모습이 측은함까지 불러오지만 벗은 몸엔 화려한 문신이 가득하다. 이는 한만복 역시 마찬가지. 한 때 소문난 조폭 두목이었지만 지금은 과거를 청산한 몸이다.

만복은 학원 강사가 죽어 나간 2층 방에 다리가 아픈 장노인을 들이려 한다. 화장실이 고장났다며 내려온 노인을 향해 "도대체 변기를 어떻게 쓰시는거야"라며 면박을 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생활에 단단히 찌든 인물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자 푸념이다.

유나와 직접 얽힌 인물들의 과거도 각기 스펙터클하다. 불륜부터 뇌물까지, 욕망에 충실한 대가로 무엇 하나씩은 잃어버렸을 캐릭터들이다. 유나의 룸메이트 김미선(서유정 분)은 간통으로 구치소에 들어간 적 있는 유나의 감방 동기. 유나와 같은 소매치기 조직에 속해있던 박양순(오나라 분)은 자신을 쫓던 형사 봉달호(안내상 분)와 눈이 맞아 결혼했고 함께 노래방을 운영한다. 남편과는 종종 불화를 겪는다. 봉달호는 과거 한만복을 감옥에 집어넣었던 강력계 형사 반장이었지만 뒷돈을 하도 밝혀 '걸레'라는 불명예스런 별칭을 얻었다.

누구 하나 평탄하게 살아 온 이가 없는 다세대 주택에 막노동 일을 하던 창만이 새로 둥지를 튼다. 삶의 기반은 특별히 나을 것이 없지만, 1화 속 맥락만 읽더라도 창만은 도덕적인 것을 넘어 측은지심이 넘치는 캐릭터다. 제 돈을 떼 먹고 도망 간 사장을 원망하기는 커녕 "내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고 봉급도 못 주는 사장님이 더 불쌍한 것 같"단다.

가난은 공통 분모지만, 창만과 입주자들의 삶 사이엔 단단한 장벽이 있다. 범죄 전과와 비도덕성을 분자로 삼아 온 사람들의 일상에 창만이 들어왔다. 시청자들은 세속적인 욕망에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 온 '밀회'의 오혜원(김희애 분)이 순수의 결정체 이선재(유아인 분)를 만나며 성장한 것을 기억한다. '유나의 거리' 속 이들 삶의 결이 과연 어떻게 얽히게 될지 궁금해질 법도 하다.

첫 화부터 묘한 서스펜스를 안겼던 '밀회'와 비교해, '유나의 거리' 첫 화에선 긴장감보단 착한 드라마의 기운이 풍겨온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인간 군상의 얼굴이 1화의 시작이자 끝이었지만 결코 퇴폐적이지 않다. 우리 주변 이웃들보다야 굴곡진 삶이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뒤엉켜 살아 나가는 것이 왠지 낯설지 않은 모양새다.

'유나의 거리'는 지난 1994년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서울의 달'을 집필한 김운경 작가가 펜을 잡은 작품. 공간적, 계급적 배경이 비슷해 '제2의 서울의 달'이라는 기대 역시 얻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짙은 페이소스가 안방에 안기는 울림은 여전히 유효한듯 보인다. 막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 '유나의 거리'에서 인간미의 미덕이 읽히기 시작했다.

매주 월·화요일 밤 9시50분 방송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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