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지난해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에서 전북 현대를 5-1로 대파할 때만 해도 국내 축구계는 그저 부상자가 많았던 전북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벌어진 일로만 생각했다. 부동산 재벌인 헝다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광저우가 2010년 중국 2부리그서 우승한 뒤 2011년 슈퍼리그로 승격하자마자 1위로 올라선 것 자체를 별다른 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광저우가 이번 ACL에서 우승하자 시선이 달라졌다. 광저우는 9일 FC서울과의 결승 2차전 홈경기에서 1-1로 비기고 1차전 원정경기 2-2 무승부를 더해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우승을 차지했다. K리그를 대표했던 FC서울이 광저우에 밀리자 아시아 축구에서는 투자의 힘이 먹혀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광저우는 2006 독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끈 마르첼로 리피 감독를 모셔오기 위해 연봉에만 160억원을 쏟아부었다. 엘케손, 무리퀴, 콘카 등 세 명의 외국인 공격수 연봉 총액도 220억원이나 될 정도로 돈의 힘을 과시했고 '아시아의 맨체스터 시티'로 불렸다. 서울은 결승 두 경기에서 광저우에 한 번도 지지는 않았지만 시원하게 이겨보지도 못하면서 원정 다득점 원칙에 울었다.
물론 K리그가 결코 약한 것은 아니다. 2009년 포항의 우승을 시작으로 2010년 성남 일화 우승, 2011년 전북 현대 준우승, 2012년 울산 현대 우승, 올해 서울 준우승 등 5시즌 연속 결승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중국, 일본, 중동 등의 투자와 발전 노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2011년 수석코치로 수원을 ACL 4강으로 이끌었던 서정원 감독이나 지난해와 올해 조별리그에서 탈락의 쓴맛을 봤던 포항 황선홍 감독 모두 거액의 자금을 앞세우는 중국의 힘을 이제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 감독은 "이제 ACL에서 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경기를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들더라"라고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자금 부족으로 외국인 선수를 제대로 영입하지 못해 애를 먹은 올 시즌의 수원을 생각하면 광저우의 우승은 그저 부러운 일이다.
라이벌 FC서울이 결승까지 올라갔다는 것도 수원과 서 감독에게는 남다른 느낌이다. 서 감독은 "서울이 광저우에 진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진단한 뒤 "서울의 결승행이 우리에게 당연히 자극이 된다"라며 다음 시즌 ACL 진출 티켓을 확보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포항의 황선홍 감독은 더 진지했다. 그는 "마음을 졸이며 재밌고 흥미롭게 결승전을 지켜봤다 서울이 전략을 잘 짰는데 결과가 아쉽게 됐다"라고 평가한 뒤 "우리는 두 시즌 연속 ACL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는데 내년에는 준비를 잘하겠다"라고 말했다.
FA컵 우승으로 이미 내년 ACL 진출권을 획득한 포항은 모기업 포스코의 경영난에 따라 운영 자금을 줄이면서 이번 시즌을 외국인 선수 없이 보내고 있다. 황 감독은 "중국, 일본을 비롯해 태국까지 투자를 많이 해 만만한 팀이 없다. 앞으로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K리그 전체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 중국 팀의 첫 우승에 의미를 부여하며 "이제 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 광저우에 자극을 받은 베이징 궈안 등 다른 팀들도 100억 이상을 투자 한다더라. 중국 외에도 분요드코르(우즈베키스탄), 애들레이드(호주) 등 아시아에서 만만한 팀이 없다"라며 앞으로 ACL 무대에서 K리그 팀들이 더욱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될 것 같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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