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단판 승부인 FA컵은 묘한 매력이 있다. 우승하면 다음 시즌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들할 뿐만 아니라 정규리그 상승세에도 기름을 부을 수 있다. 반대로 FA컵을 잃으면 목표 상실로 나머지 시즌을 어렵게 이어가기도 한다.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의 2013 하나은행 FA컵 결승전에서 양 팀은 물론 필승의 각오로 나섰지만 약간의 분위기 차이는 있었다. 포항이 다소 여유롭게 '즐기자'는 태도였다면 전북은 '비장함'으로 무장했다.
역대 세 번씩 우승을 나눠 가졌지만 시기는 달랐다. 포항은 1996, 2008, 2012년 등 비교적 최근에 FA컵 우승이 있었다. 전북은 2000, 2003, 2005년 우승을 해 오래 전 일이 됐다. 상대적으로 포항이 최근 경험적인 측면에서 유리했다.
포항은 지난해 FA컵 우승을 경험한 선수들이 그대로 선발로 나섰다. 반면 전북은 달랐다. 선발 멤버 중 정규리그, FA컵 등 우승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이들은 최은성(2001년 FA컵, 당시 대전 시티즌), 김상식(2011년 정규리그) 등 노장들이었다.
우승 DNA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큰 경기에서는 경험의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포항 선수단 대부분이 결승전을 앞두고 "즐기면 되는 것 아니냐"라며 편안함을 보였던 것도 지난해 우승이라는 고기를 먹어봤기 때문이다.
황선홍 감독도 지난해 FA컵 우승으로 지도자 인생에서 첫 우승을 맛보며 젊은 지도자 돌풍에 합류했다. 단기전에서의 우승이라 더 짜릿했다.
전북은 2011년 정규리그 우승 멤버 중 이동국이 부상으로 재활 중이고 일부는 팀을 떠났다. 사실상 새로운 팀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최강희 감독은 지난 7월에서야 대표팀에서 돌아와 선수단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경기를 치러왔다. 뭔가를 해보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대신 전북은 우승에 대한 심한 갈증이 있었다. 최은성은 "선수들 중 프로에 와서 우승을 못했던 이들이 많다. 우승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 당연하다. 괜히 비장한 것이 아니다"라며 절실함을 이야기했다.
최강희 감독도 마찬가지. 2005년 여름 전북에 부임해 그 해 FA컵 우승을 제조했고 이듬해 출전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어졌다. 대표팀을 맡느라 전북 사령탑 자리를 비웠던 최 감독이나 전북에게는 어찌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만들 수 있는 효과를 내는 것이 바로 FA컵이었다.
각자의 사연은 있었지만 양 팀의 희비는 엇갈렸다. 우승은 좀 더 느긋했던 포항 몫이었다. 연장전까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포항이 4-3으로 이겼다.
포항 노병준은 "우승을 위해서는 편안하게 하면 된다. 어차피 축구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니냐"라며 비움의 미학을 강조했다. 결국, 포항의 이런 여유로움이 45인승 버스 50대에 나눠타고 온 2천700여 원정 팬들 앞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감격을 누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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