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충격과 공포'의 포스트시즌 데뷔전을 치른 박병호(27, 넥센)가 준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넥센, 두산 양 팀 모두에게 과제를 던졌다. 남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두 팀 다 그 과제를 잘 풀어내야 한다.
박병호는 8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4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자신의 포스트시즌 데뷔전인 이날 경기에서 박병호는 4타석 2타수 1안타(홈런) 2볼넷 1타점 2득점을 기록하며 맹활약,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박병호 방망이에 떨고 있는 두산
박병호의 가을야구 데뷔전은 충격과 공포였다. 당초 박병호에 대해서는 경험을 문제삼는 시선이 많았다. 처음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만큼, 정규시즌에서 보여준 것처럼 막강한 방망이를 휘두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박병호는 이날 경기를 지켜본 대다수, 특히 두산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기는 데뷔전을 치렀다.
넥센이 1-0으로 앞서던 1회말, 박병호에게 생애 첫 포스트시즌 타석이 주어졌다. 떨릴 법도 했지만 박병호는 침착히 평소 해오던 대로 상대의 공을 기다렸다. 끈질긴 승부 끝에 두산 선발 니퍼트의 8구째 빠른공이 바깥쪽 높은 코스로 날아드는 순간, 박병호의 방망이가 힘차게 원을 그렸다. 경쾌한 타격음을 낸 공은 가운데 담장 너머로 날아갔다. 넥센에 2-0 리드를 안기는 솔로홈런이었다.
포스트시즌 첫 타석에서 홈런을 터뜨리며 충격적인 데뷔를 한 박병호에게 두산은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박병호는 이미 지난달 29일, 두산과의 정규시즌 마지막 맞대결에서 한꺼번에 3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두산 선수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뽐냈다.
두산의 공포심은 박병호의 다음 타석에서 곧바로 나타났다. 2-2 동점이 된 3회말 2사 2,3루에서 상황에서 박병호가 등장하자 두산 벤치는 고의4구를 지시했다. 만루를 만든 뒤 5번 강정호와 상대하겠다는 뜻이었다. 강정호가 삼진으로 물러나며 두산의 노림수는 적중했다.
6회말에도 박병호는 선두타자로 나서 볼넷으로 출루했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흘려보낸 뒤 볼만 연거푸 4개를 바라보며 1루로 걸어나갔다. 니퍼트가 일부러 박병호와의 승부를 피한 것인지, 아니면 앞선 승부에서 내준 홈런의 기억이 니퍼트의 제구를 흔들어 놓은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박병호였기 때문에 얻어낼 수 있는 볼넷이었다.
선두타자로 출루에 성공한 박병호는 김민성의 투수 땅볼로 2루를 밟은 뒤 이성열의 좌전 적시타 때 홈까지 들어와 3-2로 다시 앞서나가는 득점을 올렸다. 8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윤명준을 상대로 3루수 땅볼로 물러난 것이 이날 박병호의 유일한 범타였다.
넥센이 9회말 이택근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도 따져보면 박병호에게 있다. 3번 이택근이 안타를 친 상황은 2사 2,3루였다. 1루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승부를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타자가 4번 박병호. 두산은 어쩔 수 없이 이택근과의 정면승부를 택해야 했고, 결국 통한의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두산과 넥센의 과제는?
박병호의 놀라운 활약상과 함께 두산, 넥센의 과제도 뚜렷해졌다. 두산이 과제를 푼다면 첫 경기를 내준 열세를 극복하고 시리즈 흐름을 뒤바꿀 수 있고, 넥센이 과제를 해결한다면 손쉽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휴식 시간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먼저 두산은 박병호의 앞에 주자를 내보내지 않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도 두산은 위기에서 박병호와의 승부를 굳이 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김진욱 감독은 2위 싸움이 걸려 있던 지난 4일 넥센과 KIA의 경기를 돌아보면서도 "(양현종이 박병호와 정면승부를 하는 것을 보고) 제발 승부하지 말라고 속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병호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비교적 부담이 덜한 채로 박병호와의 승부를 펼칠 수 있다. 또한 큰 것을 맞아봐야 1점밖에 내주지 않는다. 반면 주자가 쌓인 상황에서 박병호에게 홈런을 내주면 순식간에 2점 이상의 실점을 허용하게 된다. 두산의 9일 2차전 선발 유희관이 특히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반대로 '4번타자' 박병호 효과를 극대화해야 하는 넥센은 박병호의 다음에 등장하는 '5번타자' 강정호의 역할이 중요하다. 강정호가 1차전에서 4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며 넥센은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박병호의 고의4구로 만들어진 3회말 2사 만루에서도 강정호는 유격수 땅볼에 그쳤다.
그러나 염경엽 감독은 1차전 종료 후 "(강)정호가 언젠가는 (찬스를) 해결해 주지 않겠어요"라며 2차전에서도 굳건한 믿음과 함께 강정호를 5번 타순에 배치할 뜻을 드러냈다. 여전히 강정호의 방망이가 승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됐다.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박병호는 두산을 상대로 "나와 상대하지 않는다면 더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호의 말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강정호가 해결사 역할을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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