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한국축구에 큰 해악을 끼친 범법자들이 다시 푸른 그라운드로 돌아오려 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 11일 정기 이사회를 열고 승부조작 가담으로 영구제명과 2~5년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선수 중 보호관찰과 봉사활동(300~500시간) 이행의 징계를 받은 선수 가운데 보호관찰 기간 동안 봉사활동을 50% 이상 성실히 이행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징후가 뚜렷한 선수들의 보호관찰 기간을 절반 이상 경감해주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11년 승부조작 파문 당시 프로연맹으로부터 보호관찰 5년 징계를 받은 최성국을 비롯해 권집, 염동균, 장남석 등 18명이 경감 혜택을 받게 됐고 그라운드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K리그 근간을 흔들고 K리그를 최대 위기로 빠뜨린 범법자들에게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올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런 기회를 주려는 연맹의 결정에 축구팬들은 날선 비난을 퍼부었다. 연맹은 K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팬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있다. 범법자들이 돌아온다면 K리그를 앞으로 보지 않겠다는 팬들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연맹은 범법자들을 동정하고 재기이 기회를 주기 위해 정작 중요한 팬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연맹은 징계 경감 결정을 이미 내렸고 이제 공은 K리그 클럽들로 돌아갔다. 대한축구협회의 최종 결정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런 방면에서는 늘 관대함(?)을 보여온 협회이기에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K리그 구단들의 선택이 남았다. 징계가 풀리고 다시 선수생활을 할 수 있게 되면 구단들이 이들을 데려다 선수로 다시 활용할 것인가? 팬들의 따가운 시선이 기다리고 있다. 범법자를 영입한 구단에 대해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기자는 연맹이 그런 결정을 내리더라도 K리그 구단들이 알아서 범법자들을 받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영입한다면 비난 여론에 시달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팬들을 소중히 여기는 K리그 클럽들이 힘을 모아 깨끗한 그라운드를 지켜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기자의 '순진한 생각'이자 '오산'이었다. 승강제와 성적 앞에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구단들은 잠시 비난을 받더라도 눈앞의 성적을 위해 범법자들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자와 만난 K리그 클래식의 한 구단 관계자는 "범법자들을 영입한다면 구단이 연봉을 얼마나 줄 것 같은가?"라고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던 기자에게 오히려 역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 관계자는 "일부 구단들은 팬들의 애정보다 성적이 나고 강등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2부 리그 팀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범법자들은 예전 좋은 선수들이었고, 징계가 풀리면 아주 싼 가격에 그들을 활용할 수 있다. 전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들을 영입하고 그들에게 주는 연봉이 얼마나 되겠는가. 싼 가격에 제대로 그들을 쓸 수 있다. 그들은 죄를 지었기에 많은 금액을 요구하지도 못하고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뛸 것이다. 이런 매력에 빠져드는 구단이 분명 나타날 것"이라며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구단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예전에 날렸던, 기량이 입증된 A급 선수를 아주 싼 값에 활용할 수 있다. 재정 악화로 갈수록 선수 수급이 힘든 상황에서 범법자라고 해도 이들을 데리고 온다면 분명 재정적으로도, 성적 면에서도 팀에 이득이다. 이런 눈앞의 이익을 뿌리칠 수 있을까. 잠시 욕먹는 것은 충분히 참고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카드인 셈이다.
또 연맹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K리그 구단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하는 것과 같다. 연맹이 징계 경감 결정을 내렸는데 구단들이 아무도 범법자들을 받지 않는다면 연맹으로선 섭섭할 수 있다. 그 섭섭함을 어떤 식으로 표출할 지는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 연맹은 범법자들을 싼 값에 내놓으며 구단들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연맹이 왜 앞장서서 그런 일을 하는가. 왜 푸른 그라운드를 다시 더럽히려 하는가. 왜 구단들과 함께 비난을 나눠가지려 하는가. 아직 시간적으로 죄를 범한 대가를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되지 않는 범법자들이 다시 뛰어다니는 축구장에 누가 가고 싶어 하겠는가. 어떤 부모가 아이 손을 잡고 K리그 경기장을 찾아 정정당당한 승부의 현장이라며 꿈과 희망을 가르치겠는가. 연맹이 K리그 팬들의 등을 돌리게 하고 있다.
축구밖에 몰랐던 선수들이 한순간 잘못된 생각으로 승부조작 등에 가담했을 수 있다. 젊은 나이이기에 인간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계가 걱정된다면, 연맹은 황당한 징계 감면 결정을 내려 구단들에게 허튼 욕심을 갖도록 부추길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들을 연맹 직원으로 뽑는 것이 낫다. 축구를 위한 좋은 일에 능력을 쏟으면서 반성하고 갱생하도록 연맹이 월급을 주며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면 된다. 승부조작 방지 프로그램을 함께 머리 맞대고 짜도 되겠다. 국가대표나 프로 클럽에서 경력을 쌓은 고급 인력을 연맹이 싼 값에 직원으로 쓸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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