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대한축구협회가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44) 전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을 새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하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선임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축구협회는 홍 감독과 오는 2015년 1월 호주 아시안컵까지 2년 계약을 했다. 이로써 홍 감독은 다음달 동아시아축구연맹 선수권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르고 2014 브라질월드컵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홍 감독의 선임이 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와는 별개로 대한축구협회가 과연 제대로 된 논의 과정을 거쳐서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축구협회는 최강희 감독이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까지만 치르고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취임 당시부터 꺼냈지만 후임 감독과 관련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종예선 종료 시점이 다가올수록 최 감독의 유임론을 흘리는 등 상황 판단을 흐리게 했다. 정몽규 회장이 최종예선 통과를 전제로 최 감독의 유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해 상황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외국인 감독 영입 작업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정 외국인 감독이 강력한 후보로 부상하거나 축구협회의 핫라인을 통해 누군가와 접촉했다는 정황도 포착되지 않았다. 축구협회가 해외 감독 영입 작업시 이용하는 대행사도 이번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해외 축구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축구협회가 해외 감독을 알아보는 루트를 다변화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선임 작업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미 홍명보 감독 선임을 굳힌 상태에서 여론을 떠보기 위해 해외의 명성 있는 감독 이름을 흘린 것 같다"라고 추측했다.
실제 허정무 부회장이 홍 감독과 교감을 나눴다고 밝힌 뒤 몇몇 해외 감독이 후보군에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여론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홍 감독 선임을 위한 허수의 후보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기술위원회가 이번에도 제 몫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기술위는 감독 추천권이 있지만 성인대표팀을 담당하는 허정무 부회장이 모든 실권을 갖는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또 한 번 기술위원회 무용론이 나오게 됐다.
축구협회는 지난달 조직 개편을 하면서 황보관 기술위원장을 유임시켰다. 대표팀 경기가 계속되고 있어 기술 파트의 공백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 기술위는 이란과 최종전 다음날인 19일 긴급하게 소집된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여기서 추천된 안건을 가지고 24일 회장단 회의에서 논의해 홍 감독으로 결정을 내렸다.
과거 기술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기술위에 있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제대로 된 논의를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림을 그려보니 번갯불에 콩볶듯 상황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얼마나 건설적인 논의가 이뤄져 새 감독을 선임했는지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실제 지난해 기술위원 중 한 명이었던 하석주 전남 드래곤즈 감독은 팀 사정을 이유로 위원직을 중도 사퇴했다. 현재 기술위원들이 국제적인 축구 환경을 꼼꼼히 챙기며 대표팀 사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어있다.
익명의 한 관계자는 "홍 감독에 대한 공감대는 분명히 있었다"라면서도 "다만 국제적인 감각이나 전술 수행 능력 등을 복합적으로 따져보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보관 위원장도 지난해부터 기술위 개편을 시사했지만 이뤄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기술위는 새 감독 선임에 절차상의 통로 역할만 했다. 축구협회의 새 감독 선임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기술위의 개혁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 축구협회 역시 여론을 떠보는 식의 구태는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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