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SK 투수 윤희상과 여건욱은 무명 시절이 길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4년 데뷔한 윤희상은 8년 만에 첫 승을 올렸고, 여건욱도 입단 5년 만에 승리 투수의 기쁨을 맛봤다.
윤희상은 지난해 혜성처럼 나타나 SK 구단의 유일한 10승(9패) 투수가 됐다. 주목받지 못하던 투수에서 팀의 에이스급으로 급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여건욱이 '제2의 윤희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눈도장은 확실하게 찍었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여건욱은 지난 3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1피안타 6볼넷 5탈삼진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거뒀다.
초반에는 볼넷을 내주며 불안했지만 곧 제구가 잡히면서 6이닝을 책임졌다. SK는 이날 여건욱의 호투 덕에 3연패를 끊고 시즌 첫 승을 거뒀다. 두산 타자들은 여건욱으로부터 단 1안타를 뽑아내는 데 그쳤다.
여건욱은 "경기 전 불펜에서 공이 정말 좋았다. 성준 코치님이 완봉 페이스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경기가 시작되니 (잠실구장) 마운드가 불펜과 너무 다르더라. 초반에 밸런스가 흐트러진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건욱은 1회말 1~3번 세 타자를 연속 볼넷 출루시켜 무사 만루로 몰린 뒤 김동주에게 땅볼을 유도하고, 다음 홍성흔을 병살타 처리하며 초반 큰 위기를 넘겼다. 여건욱은 "세 타자를 내보내고 나니 아차 싶었다. 김동주 선배가 아닌, 그냥 오른손 타자라고 생각하고 던졌다"고 살떨렸던 순간을 돌아봤다.
2009년 2차 5라운드 전체 40순위로 입단한 여건욱의 1군 성적은 입단 첫해 2경기서 1.2이닝을 던진 게 전부였다. 이후 경찰청에 입대해 제구를 가다듬었다.
승승장구하는 주위 선수들은 강력한 자극제가 됐다. 여건욱은 "표현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올해는 내가 마운드에 오르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부터 SK 마운드의 새 얼굴로 떠오른 여건욱은 김광현과 윤희상이 부상으로 빠진 팀 선발진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1군에서 자리를 잡겠다"는 그의 목표를 이루려면 이들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여건욱은 "선발 욕심은 없다. 팀 동료를 경쟁상대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 할 일만 제대로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자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원정경기 룸메이트인 윤희상이 그에겐 좋은 거울이다. 여건욱이 첫 승을 거둔 날 윤희상은 "첫 승 하기 힘들지. 그래도 나는 8년이나 걸렸는데 너는 5년 만에 해냈으니 형보다는 훨씬 낫다. 이제 2승, 3승은 수월할 것"이라며 후배의 데뷔 승을 축하하며 다독였다. 여건욱은 "(윤)희상이 형의 장점을 모두 흡수하고 싶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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