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한국의 충격적인 탈락에는 대표팀의 중심을 잡아줄 구심점이 없었다는 점도 한 몫을 했다.
한국은 5일 대만을 3-2로 꺾고 2승1패로 대만, 네덜란드와 동률을 이뤘지만 TQB(Team Quality Balance)에서 밀리며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첫 대회 4강, 지난 대회 준우승 팀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부진을 거듭하던 연습경기 성적 때문인지 대표팀은 대회 준비 기간 내내 힘이 빠진 모습이었다. 훈련 도중 활기찬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친한 선수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있을 뿐, 하나로 똘똘 뭉친 대표팀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대표팀이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는 것은 첫 경기였던 네덜란드전에서 0-5로 참패를 당한 뒤에 잘 드러났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이 아무 말 없이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는 것. 선수들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겠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팀 분위기를 다잡아야 했다.
다행히 호주전에서 6-0으로 승리하면서 기사회생하는 듯했지만, 5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 했던 대만과의 경기에서 3-2 승리에 그쳤다. 한국 야구가 그동안 좋은 성적을 거둔 원동력이었던 하나로 똘똘 뭉친 조직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대회였다.
이번 대표팀의 최고참은 포수 진갑용이었다. 그러나 진갑용은 강민호의 백업 역할을 맡으며 뒤로 물러나 있었다. 덕아웃 분위기를 주도하는 역할도 후배들에게 맡겼다. 진갑용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이승엽 역시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했다.
대표팀의 중심은 김태균, 이대호, 정근우, 오승환 등 1982년생 동갑내기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선배들과 후배들을 한데 엮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아직은 어정쩡한 연차인 이들에게 대표팀의 구심점을 맡아주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는 지도 모른다.
김태균과 이대호의 공존도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승엽이 함께 대표팀에 승선하면서 누군가 한 명은 벤치에 대기해야 했던 것. 김태균은 이승엽과 함께 플래툰 시스템의 관리를 받았다. 붙박이 4번타자로는 이대호가 선택됐다.
김태균과 이대호는 현재 서로 뛰고 있는 리그는 다르지만 국내 최고 타자임을 자부해온 선수들이다. 자존심 역시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한 명의 특급 선수 이승엽과 함께 포지션이 겹치면서 대회 기간 내내 어쩔 수 없이 직, 간접적으로 비교를 당해야 했다.
셋 중 한 명이 대타로 등장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굉장한 위압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야구는 예정된 틀에 따라 움직이는 게임이 아니다. 변화무쌍한 감정이라는 것에 지배를 받는 사람이 하는 스포츠다. 김태균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벤치를 지켜야 하는 최고스타의 기분은 좋을 리가 없다.
제1회 대회인 2006년 한국이 4강에 오를 때는 이종범(현 한화 코치)이 구심점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 코치는 경기에서도 맹활약하며 선수단을 이끌었다. 준우승을 차지했던 제2회 대회에서는 박경완이 주전 포수로 나서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그런 구심점에 선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대표팀의 구성원들은 모두 스타급 선수들이다. 그러나 스타들을 한데 뭉치게 할 리더가 없었다. 선수 구성은 해외파들이 대거 참가했던 지난 두 번의 대회가 더욱 화려했다. 그러나 결속력이 떨어지는 것은 오히려 이번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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