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이만수 SK 감독은 롯데와 플레이오프를 앞둔 미디어데이에서 4차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만수 감독뿐 아니라 양승호 롯데 감독 포함 이날 자리에 참석한 양 팀 6명 모두 손가락 4개를 펼쳤다. 3차전에서 끝나는 일방적인 승리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16일 1차전이 끝난 뒤 조심스럽게 SK의 3연승이 점쳐지기도 했다. 선발과 불펜 어느 하나 빈틈이 없는 마운드였다. 호수비를 앞세워 위기를 벗어나고, 찬스를 놓치지 않는 타선의 강점 역시 그대로였다.
자신감은 커졌다. 이만수 감독은 17일 2차전을 앞두고 "아직도 4차전 승부를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일찍 끝나면 좋다"며 웃었다.
1차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이라면 3연승도 무리는 아니었다. 더구나 에이스 김광현의 예상 밖 호투 덕분에 팀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다.
가을 무대 경험이 풍부한 SK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중심을 잃었다간 추락은 한순간이다. 6시즌 연속 포스트시즌을 치르며 체득했다. 선수들은 "이제 한 경기 끝났을 뿐이다. 긴장감을 유지해 2차전까지 잡고 편안한 마음으로 부산에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재해 있던 안일함이 위기서 표출된 것일까. 2차전에서 SK 타선은 수 차례 찬스를 날렸고, 흐름이 꼬이자 철벽 불펜마저 흔들렸다.
1회말 최정의 선제 투런포로 초반 승기를 잡았고, 6회엔 상대 불펜의 핵 정대현을 무너뜨리며 추가 2점을 뽑았다. 4-1로 앞선 7회초. 이만수 감독이 선택한 엄정욱 카드는 수비 실책이 겹쳐 3실점 동점 허용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 감독에 따르면 애초 구상은 선발 윤희상에 이어 박희수에게 2이닝, 정우람에 1이닝을 맡겨 경기를 끝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6이닝 1실점 호투한 윤희상에 이어 7회 마운드를 물려받은 이는 엄정욱이었고, 결과적으로 이 카드는 실패했다. 이 감독은 경기 후 "오늘은 감독의 실패"라고 자책했다. 4-4 동점으로 따라잡힌 SK는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9회부터 등판했던 정우람이 연장 10회초 밀어내기 볼넷으로 결승점을 내줘 4-5로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4-4 동점을 허용한 이후 공격에서는 달아날 찬스를 놓친 것이 아쉬웠다. SK는 7회말 정근우의 3루타로 만든 무사 3루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다음 세 명의 중심타자가 정근우를 홈으로 불러들이지 못한 것이다. 박재상은 2구, 이호준과 박정권은 초구에 배트를 내밀었다가 내리 범타로 물러났다. 9회말 2사 2, 3루의 끝내기 찬스에서는 이호준이 유격수 땅볼에 그치며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갔다. 이번에도 초구를 건드린 결과였다.
10회초 한 점을 내준 뒤 말 반격에서도 1사 1, 3루 찬스가 있었다. 얼마든지 동점 내지 역전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최윤석과 임훈이 허무하게 삼진과 뜬공으로 발길을 돌렸다. 롯데 덕아웃은 환호했고, SK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만약 경기 후반 찬스에서 한 번이라도 득점에 성공했다면 경기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1승 1패. 시리즈는 처음 예상대로 최소한 4차전까지 이어지게 됐다.
1차전에서 선제 홈런을 때린 4번타자 이호준은 이후 찾아온 만루 찬스에서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2차전을 앞두고 이호준은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다. 여기서 내가 치면 끝난다는 생각이었다"고 당시 심경을 털어놓았다. 욕심을 부렸다는 얘기다.
큰 것 한 방으로 끝내는 승리도 짜릿하지만, SK의 최대 강점은 세밀한 플레이에 있다. 집중력을 바탕으로 한 가장 'SK다운' 야구가 필요해진 시점이다. 준플레이오프를 보며 절실하게 느꼈다는 '기본'을 비룡군단은 다시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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