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전무후무한 라인업이다. 성공하면 11년 전의 영광이, 실패하면 쓰라림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롯데 자이언츠와 준플레이오프를 3일 앞둔 가운데 두산 베어스는 주전이 무려 4명이나 빠진 채로 포스트시즌에 나설 전망이다. 주포 김동주, 민완 2루수 고영민. 날쌘돌이 정수빈과 내야의 중심 손시헌이 그들이다. 이들의 비중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아 두산은 가을 무대에서 '모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선발 라인업 9명 가운데 절반 가량 새 얼굴로 채워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올 시즌 주전 내야수로 발돋움한 최주환을 감안하면 지난해 주전급 선수들 중에서 무려 5명이 바뀌는 셈이다. 이번 포스트시즌이 두산 입장에선 '실험'을 넘어 '도박'으로도 여겨지는 이유다.
아직 포스트시즌 명단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김동주와 고영민을 '가을 무대'에서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진욱 두산 감독은 이들의 포스트시즌 엔트리 합류 가능성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비치고 있다. 여러가지 정황을 감안할 때 이들이 준플레이오프 명단에 포함될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정상 몸상태를 회복한다 해도 1군 무대 실전 감각이 무척 떨어진 상태다.
다행히 두산은 대안을 찾았다. 4번타자 윤석민과 2루수 오재원이다. 윤석민은 시즌 후반 급피치를 올리면서 '포스트 김동주'가 아닌 '현재의 윤석민'으로 입지를 굳혔다. 윤석민은 후반기에만 타율 3할2푼3리 6홈런 24타점으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개인 첫 두자릿수 홈런의 기쁨도 맛봤다.
1루수와 2루수를 모두 볼 수 있는 오재원은 빠른 발과 물샐 틈 없는 수비력에 김 감독이 중요시하는 센스 있는 주루 플레이 능력도 보유했다. 승부 근성도 뛰어나 포스트시즌 같은 큰 경기에서 주목할 선수로 꼽힌다. 올 시즌 부상으로 76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고비마다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쳐줬다.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오재원은 최주환과 2루를 나눠 맡을 전망이다.
안와벽 골절로 시즌 아웃된 정수빈의 공백은 꽤 커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올 시즌 외야수 부족 현상으로 고생한 두산이다. 더구나 정수빈은 김 감독이 높이 평가하는 '발로 득점을 만들 수 있는' 선수다. 베테랑 임재철과 정진호가 허전해진 외야 전력에 보탬이 돼줘야 한다. 임재철은 안정적인 수비력과 풍부한 경험이, 정진호는 타격 센스와 빠른 발이 강점이다. 한편 4일 강남 세브란스 병원서 코뼈 수술을 받은 정수빈은 빠르면 다음주 초에 퇴원할 예정이다. 다행히 우려했던 시력엔 이상이 없다고 한다.
오른손 검지 미세 골절 판정이 난 유격수 손시헌의 빈자리는 김재호가 책임져야 한다. 안정적인 수비력과 내야 전체를 아우르는 손시헌의 통솔력은 대체하기가 무척 어렵다. 적어도 유격수 수비에 있어선 대한민국 '넘버1'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메워야 하는 법. 김재호의 강점은 화려하지 않지만 탄탄한 수비력이다. 수비 범위가 넓고 포구가 안정적이다. 다만 큰 경기를 치러본 적이 별로 없는 게 약점으로 꼽힌다.
포스트시즌은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 큰 경기에서 여러 번 깨지고 쓰러져봐야 '가을 무대'에서 승리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두산은 정상 목전에서 쓰러진 아픈 기억을 다수 갖고 있다. 2005년 한국시리즈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5차례나 포스트시즌에 오르고도 정작 우승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두산이 '미라클 두산'으로 불린 지난 2001년을 마지막으로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두산은 한화를 2연승으로 제친 뒤 플레이오프서 현대를 3승1패로 제압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선 당대 최강 전력으로 꼽힌 삼성에 4승2패로 승리하고 통산 3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당시 우승의 주역 중 현역 선수로 두산에 남아 있는 인물은 김동주와 투수 이혜천뿐이다. 그러나 김동주는 1군 전력에서 배제된 상태다. 여러가지 이유가 돌고 있지만 결론은 구단이 그에게 요구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2000년대 들어 두산의 가장 큰 강점은 풍부한 선수층이다. 조금만 기회를 주면 주전급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선수들이 화수분처럼 배출됐다. 주력 선수 4명이 한꺼번에 빠진 올 포스트시즌이야말로 두산의 저력이 발휘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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