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던져버려, 어제는 잊어, 달려나가면 돼(Throw it away. Forget yesterday. We'll make the great escape)."
신나는 팝펑크 음악이 야구장에 울려퍼진다. 앳된 얼굴의 왼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 그리고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안타가 이어진다. 요즘 정수빈(두산)이 타격할 때 반복되는 모습이다. 메사추세츠 출신 록그룹 'Boys like Girls'가 부른 그의 테마곡(The Great Escape)처럼 두산은 최근 경쾌한 야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 선두에 정수빈이 있다.
시즌 개막 전만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직 초반이지만 정수빈은 거침없이 방망이를 휘두른다. 25일 현재 타율 4할1푼(39타수 16안타)에 도루 3개다. 8개 구단 전체에서 3위, 팀내에서 단연 최고 타율이다. 그를 '딱총'으로만 여긴다면 오산이다. 장타가 벌써 4개(2루타 3개, 3루타 1개)다. 워낙 빠른 발을 보유해 조금만 깊숙한 타구를 날려도 순식간에 장타로 연결된다.
2년 전만 해도 정수빈은 가능성을 인정받는 정도의 선수였다. 체구가 작아 발만 빠른 선수로 인식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풀타임 주전을 차지한 지난해 128경기에 출장하면서 그에 대한 인식은 바뀌었다. 장기인 주루플레이는 물론 타격의 컨택트 능력도 향상되면서 '미래의 1번타자'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 정수빈의 기량이 만개한 느낌이다. 타격과 주루, 수비 모두 흠잡을 데 없는 활약으로 동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무엇보다 기습 번트로 만드는 안타가 많아졌다. 상대 투수와 야수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절묘하게 타구를 보낸다. 워낙 발이 빨라 조금만 수비수가 공을 늦게 처리해도 1루에서 산다. 이런 식으로 벌써 4개의 번트안타를 만들었다. 지난해 풀시즌을 치르면서 많은 경험을 해본 결과다.
이런 그를 바라보는 두산 선수단의 시선은 흐뭇하기 그지없다. "타석에서 자세가 바뀌었다. 끝까지 공을 보고 스윙한 결과 컨택트 능력이 향상됐다"는 말이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정수빈의 타순은 유동적이다. 상대에 따라 2번과 하위타선을 오간다. 어느 자리에서든 제 몫을 기대 이상으로 해주고 있다. 9번 타순에선 1번 이종욱과 테이블을 차리고, 2번 타순에선 3번 김현수와 4번 김동주에게 기회를 만들어준다. 두산이 팀득점(58개)과 팀타율(0.290) 2위에 오르는 데 그의 공이 무척 크다.
정수빈은 올 시즌 3할 타율과 50도루를 노리고 있다. 많은 도루를 위해서는 무조건 살아나가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그다. 장차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1번타자가 꿈인 그의 질주에 두산이 함지박만한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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