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1990년대 전북 현대는 K리그 강팀 사이에서 '승점자판기'로 불렸다. 상대팀에 승점 3점을 충실히 제공하는 것은 물론 처한 환경은 열악하기만 했다. 선수들에게는 입단 기피 대상 팀 중 하나로 꼽혔다.
전북에 변화의 큰 물결이 닥친 것은 2005년 여름 최강희 감독 부임과 이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부터다.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에서 톡톡한 홍보효과를 체감한 뒤 구단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조재진(은퇴), 이동국, 김정우 등 한국 축구의 중심인 스타 선수들이 전북에 정착했다. "KTX로 (서울에서) 2시간이면 접근 가능하니 수도권이나 다름없다"는 축구대표팀 최강희 감독의 말이 시사하듯 K리그를 선도하는 구단으로 성장중이다.
최신식 클럽하우스도 조성중이다. 최고의 시설을 위해 이철근 단장이 직접 유럽의 주요 명문팀 클럽하우스와 연습구장을 시찰하며 장점 모으기에 집중했다. 꼼꼼하게 짓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
그래도 전북의 고민은 계속된다. 최근 K리그는 시도민구단들이 외풍에 시달리고 기업구단들은 모기업의 지원 없이 사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는 등 좋지 않은 여건에 몰려있다. 자생력을 갖추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헛돈과 정력만 낭비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전북 이철근 단장의 머리는 더 아프다. 지역 사회와의 융화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는 구단으로의 성장이 목표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경기력으로 대표되는 전북의 '닥공(닥치고 공격)'이 아시아 전역에 히트상품으로 소개됐지만 소위 '글로벌 경영 마인드'를 갖추지 못하면 이 역시 큰 소용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 단장은 "전북에 이런저런 경력들이 붙었지만 명문팀으로 가려면 아직 멀었다. K리그에서는 지역 사회에 확실하게 뿌리내리고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세계에 어필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북의 성장을 지켜보는 모 구단 고위 관계자는 "전북은 그동안 외형적 성장이라 할 수 있는 '오르는 방법'만 알았다. 어느 순간 분명히 전체적으로 위기가 올 것이다. 그 때 대처 방법을 찾는다면 진짜 명문으로 도약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뼈 있는 조언을 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이 단장은 구단 프런트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늘 '혁신'을 노래한다. 끝없는 자기 발전이 곧 구단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프런트 직원들에게 '독사'이자 '악마'인 이 단장은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 생각한 바는 행동으로 옮긴다. 자치단체장과의 만남에서는 '스포츠마케팅을 통한 지역 밀착 강화'를 강의하고, 모그룹 임원들에게는 '구단을 통한 그룹의 글로벌 홍보 강화 방안'을 내세워 운영비를 끌어온다.
모기업의 공장이 있는 브라질이나 체코로 전지훈련을 가서 그룹의 홍보 일선에 나서면서 연고지인 전북의 브랜드를 동시에 알리는 효과를 노리는 노력도 하고 있다.
이 단장은 "이제는 글로벌이다. 구단은 철저한 지역성을 가지면서도 세계와 겨룰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여섯 차례나 챔피언스리그를 경험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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