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덕기자] 'K팝스타', 인기 있는 프로그램답게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런 대로 잘 왔다. 놀라운 보석들이 있었고 그들이 안겨준 감동이 있었다. 심사위원들도 나름 신선했다. 그런데 이제 시청자들은 '식상하다', '위기다', '감동이 없다'고 투덜거린다. 자, 어느 장단에 맞추리오.
가장 큰 문제는 모두가 위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혹은 진부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왜 생방송 무대는 매번 억지로 숙제하는 느낌일까. 아이들은 급하게 숙제를 해내는 기분이고, 심사위원들은 근엄하게 숙제를 검사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제작진은 숙제하고 검사하는 학생과 선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마치 홈런 타자들을 데려다가 번트 게임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무대는 화려해졌지만 감동은 줄었다. 메이크업은 진해지고 의상은 화려해졌지만 울림은 덜하다. 여기에 심사위원들까지 자기검열과 자기 복제, 그리고 모순과 몸사리기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초심을 기억할 때다. 정답은 '다시 음악으로', 혹은 '내려놓기'다. 'K팝스타'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를 생각하면 좀 더 포커스는 명확해진다. 시청자들은 그 아이들이 선물해준 감동에 빠져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이하이에 박지민에 백아연에 이미쉘에 수펄스에 김수환에 반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의 노래가, 무대가 빛나지 않는다. 생방송 무대 적응 문제? 서서히 되어가는 듯하다. 기술적인 문제? 하나씩 수정해나가면 된다.
보다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해결책은 감동을 안기는 노래, 그 가수와 그 무대를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 몇 주 째 계속해서 두고 두고 '다시보기'할 만한 무대가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중언부언 심사위원들의 이론만이 귓가를 맴돈다.
'사랑해요'를 외치며 자유롭던 심사위원들은 지금은 마치 뭔가에 짓눌린 듯 자신의 이론 혹은 논리를 정당화하기에 급급한 느낌이다. "사랑해요"를 외치던 보아는 신선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자유로운 감탄을 아끼는 느낌이다. 양현석도 "제가 무식한 걸까요. 좋으면 좋은 겁니다"라고 말하던 '공감 만점' 자신감을 놓은 모습이다.
박진영은 자신이 펼쳐놓은 이론에 아이들을 끼워맞추는 듯한 느낌이다. 심사를 하고 있다기보다 아이들에 맞춰, 아이들을 샘플로 자기 이론을 펼치거나 검증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심사평만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래의 주인공으로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에게 '완성형'의 가수가 갖춰야 할 모든 요소들을 모두 다 원하는 듯한 모습은 적절치 않다.
심지어 18일 방송에서 양현석 심사위원의 경우 이하이에게는 "그분이 안 왔지 않느냐. 그 분이 올 수 있도록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따끔하게 충고해놓고는, 잠시 뒤에 나온 백아연에게는 "노래는 80점이었지만, 안 하던 퍼포먼스를 보여줘 점수를 좀 더 준다"고 엇갈린 심사평을 내놨다.
도대체 새로운 시도를 하란 것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걸 집중적으로 하란 것인가. 두 아이들에 해준 심사평을 유심히 비교해 들어보면 어떻게 하는 게 좋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 때 그 때 다르다!'
심사위원들에 조언을 하자면, 지나친 압박감을 떨쳐놓고 즐기기 바란다. 연습생 월말 평가를 하는 기획사 사장님이 아니라 미래의 K팝 스타를 뽑는 축제의 장에 참여해 함께 즐긴다는 기분으로 좀 더 여유롭게 즐기기를.
아이들에게 그토록 '무대를 즐기라'고 말하는 본인들부터 무대와 심사를 즐기기를 바란다. 자신의 이론에, 스스로의 논리에, 혹은 악플에 대한 부담에 위축되어 조심 조심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듯한 당신들의 모습이야말로 '졸린 심사위원들'이다.
생기를 더하라. 보아는 더 자유롭게 '사랑해요'를 외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춤추라. 양현석은 "좋으면 좋은 겁니다"라는 진솔한 소감을 좀 더 많이 심사평에 대신하라. 박진영은 제자 수지의 조언대로 더 많이 웃고, 이론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아이들을 품어라. 용기를 북돋아줘라.
물론 심사위원 탓만 할 수 없는 게, 실제로 근사한 무대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근사한 무대가 연달아 나온다면 프로그램에 훨씬 생기가 돌 것이고 심사위원들도 보다 자유롭게 웃고, 눈물 흘리고, 감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무대 한 방이 절실하다. 그 주인공이 누가 되든 그런 무대 한 방이 빠른 시기에 터져나와야만 한다. 이미 어느 정도 뻔한 무대와 피곤한 심사평에 지쳐버린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숙제하기와 숙제 검사의 장'으로 다가와서는 곤란하다.
시청자들도 조금 내려놓기 바란다. 심사위원 3인은 대한민국 가요계를 이끌어가는 3사의 대표자들이다. 이들의 심사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장점 위주로 취하자. 이들도 사람인 지라 실수할 때도 있음을 너그럽게 인정해주자. 때로 감성적인 심사평이 나온다면 그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이쯤에서 1월1일 방송된 김수환의 '본선 2라운드 랭킹 오디션' 무대를 되새겨 볼만하다. 화려한 조명이나 메이크업, 의상 대신 김수환은 소박한 무대 위에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서서 '임팩트 넘치는 과잉 펌프질 된 편곡' 대신 '원곡 그대로'의 '다행이다'를 불렀다.
KBS '개그 콘서트'의 '위대한 유산' 코너에 나오는 황현희의 표현대로 하자. "'다행이다' 부르던 김수환 어디 갔어? 어디 갔어?!"
그런 감동 좀 안겨주기를. 당시에 진한 감동을 받고 정적 속에서 쉽게 말을 잇지 못하던 세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웠던가. 이런 지적질, 저런 지적질에 시청자들은 지치고 피곤하다. 그런 지적질은 지금은 좀 아껴뒀다가 그 중 몇몇 아이가 3사 소속 가수가 됐을 때 더 치열하게 가르쳐주면 된다.
당시 박진영은 김수환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본선 1라운드에서 제가 불합격을 줬네요. (제가) 틀려서 참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진심을 담은 노래가 무엇인지 얘기하며 나온 그 겸허한 인정은 그 어떤 지적과 이론, 독설보다 아름다웠다.
'K팝스타'여, 초심으로 돌아가 노래가 주는 감동의 근원, 그 진심을 잊지 말고 전해달라. 경직된 힘을 빼고 유연하게 '내려놓아라'. 그리고 모두가 더 즐겨라. 자칫 감동과 공감을 잃고 '피곤하고 졸린 그들만의 리그'로 퇴색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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