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기자] '해를 품은 달'의 양명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음에 비운의 죽음을 택했지만, 양명을 연기한 정일우는 화려하게 빛났다.
웃는 얼굴 속에 아련한 눈빛을 갖고 있던 남자. 허허실실 웃지만 가슴으로 눈물 흘렸던 이 남자 때문에 시청자들은 더 아팠다. 마지막은 더 그랬다. 결국 아우와 벗을 향한 우애와 희생으로 비장한 최후를 맞이했다. 애절한 순애보로 시청자를 울리며 떠났다. 훤(김수현 분)과 연우(한가인 분)의 행복한 결말에도, 양명의 죽음으로 드라마는 '슬픈' 해피엔딩이었다.
드라마 종영 후인 지난 16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해를 품은 달'의 긴 여운을 남겼던 '양명일우' 정일우를 만났다. 전날 드라마 종방연과 뒤풀이, 그리고 친구들의 깜짝 파티로 "해가 뜰 때 집에 들어갔다"는 정일우는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드라마 이야기가 시작되자 금새 미소를 되찾았다.

'꽃미남 라면가게' 종영과 거의 동시에 투입된 '해를 품은 달'. 출연자 중 가장 늦게 합류한 만큼 준비할 시간도 적었고, 그래서 고민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작품을 결정하기까지 밤새 고민했어요. 원작에서도 매력있는 캐릭터지만 드라마보다는 조금 더 어둡고 소심하고 소극적인 면이 있어서 조금 걱정도 됐어요. 감독님과 작가님을 뵙고 난 뒤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품이 끝난지 얼마 안 되서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대본을 미친듯이 보는 수 밖에없어요. 사실 그래도 쉽게 떨쳐지진 않았죠(웃음)."
양명은 드라마 원작과 가장 많이 달라진 캐릭터. 비중도 적었지만 드라마를 각색한 진수완 작가는 양명의 죽음이 진한 여운이 남아 캐릭터를 부각시켰다고 했다.
정일우는 "원작에 신경을 쓰고 하진 않았다. 가장 중요했던 느낌만 기억하고 드라마의 양명이 되려고 노력했다"며 "소설에서는 양명이 어둡고 아픈 부분이 많기 때문에 초반부터 부각을 시키면 다운이 될 것 같고, 후반에 힘이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 여자를 잊지 못하지만 그래도 밝고 긍정적인 친구로 그려가야 할 것 같았다"고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했다.
정일우는 "한량이면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것 때문에 처음에는 '붕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웃었다.
드라마는 아역 연기자들에서 성인 연기자로 넘어가면서 진통을 겪었다. 호된 연기 논란을 겪기도 했고, 정일우 역시 아역배우와의 비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정일우는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했다. 일희일비하면 연기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중심을 잡고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양명이든, 성인 양명이든 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감독님이 이민호 군에게 요구한 것을 캐치하려고 했다. 똑같이 하기보다는 어린 양명을 잘 이어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장자의 아픔과 냉대를 고스란히 가슴 깊이 간직하면서도 겉으로는 유유자적한 풍류남아이기도 한 양명. 여기에 애절한 순애보의 사랑까지, 극중 누구보다 세밀한 감정선이 필요했던 캐릭터다.
정일우는 가장 힘든 신으로 "모든 장면이 어려웠다"며 "특히 역모 꾸미는 양명을 연기하기가 힘들었다. 역모를 꾸미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훤을 위한 작전이 있었다. 시청자들까지 속여야 하는 동시에 연결고리도 만들어야 했다. 사실 시청자들한테 '양명이 미친거 아니냐'고 욕도 얻어먹었다"고 말했다.
마지막회 시청자들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양명의 죽음 장면도 쉽지 않았을 터. "죽기 전에 그동안의 오해와 속마음에 담고 있었던 부분들을 진실로 표현하려고 했다. 시청자에게 알린다는 생각보다 제 감정을 훤에게 알리는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양명의 죽음 이외의 결말을 생각해보지 않았냐는 말에 "양명의 죽음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최선의 결말이었다. 인터넷에서도 '정일우는 죽어야 제맛'이라며 '양명이 죽어야만 캐릭터가 산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드라마 이외의 촬영 현장에서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 어느 해보다 혹독했던 한파 속에서 추위와 싸워야 했고 링겔도 수차례 맞았다.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다 손가락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정일우는 아직 밴드를 하고 있는 손을 보여주며 "새살이 돋고 있다. '일지매' 때는 발목 인대도 늘어나고 워낙 많이 다쳤고 '49일' 찍을 때는 코뼈도 부러졌다. 이건 매우 소소한 부상이다"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드러냈다.

'해품달'의 연출을 맡은 김도훈 PD는 "양명 정일우, 당신의 참여는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했다. 일우 씨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던 건 연출자로서 또 다른 재미와 보람이었다"고 평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은 정일우에 뜨거운 호평을 하며, 연기자로서의 성장에 높은 점수를 줬다.
정일우는 이에 "'하이킥' 말고 새로운 대표작을 추가했다"며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띄웠다.
'해품달'은 40%가 넘는 높은 시청률로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출연작 중 최고의 성적. 그러나 정일우는 "시청률은 신의 영역이다. 시청률이 잘 나오는 그 순간은 기분이 좋지만 지나면 그 뿐"이라며 다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연기력이 성장했다는 칭찬에 대해서는 "연기가 늘었다기보다 연기를 하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다. 편집의 힘인 것 같다. 좀처럼 칭찬을 하지 않는 친구들이 이번엔 대사를 따라하며 잘했다고 해주더라"고 너스레를 떨며 "한단계 더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에서 연기의 균형을 잡는 것을 많이 배운 것 같다. 용기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정일우는 '해를 품은 달' 종영 후 해외 화보 촬영과 드라마 해외 프로모션 등으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할 예정. 차기작과 관련 "당분간 공백기가 있을 것 같다. 차기작은 열어놓고 생각하려고 한다. 작품 3개를 연달아했기 때문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휴식을 하면서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고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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